광화문 현판, 훈민정음해례본이 답이다 [허준혁한방]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바뀐 이유
'미래가치 품은 국가유산 시대 개막, 국가유산청 출범'... (2024.5.17)
문화재청이 60여 년 간의 문화재 정책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기준과 시대 흐름 반영한 ‘국가유산’ 체계로 전환하겠다며, 국가유산청으로 출범하며 내걸었던 명분이자 기치였다.
일제식 표현이자 재화의 성격이 강한 문화재란 명칭 대신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와의 연계를 위해 유산(Heritage)의 개념을 도입하여 국가유산청으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또한 문화재라는 용어에 따른 '과거 보존'이나 ‘원형 보존(복원)’ 프레임의 과거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에서 활용하는 미래지향적 정책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광화문현판, 애당초 원형은 없었다
광화문은 세종 8년(1425년)에 이름 지어졌다. 그때 현판이 원형이다. 그러나 그 원형 현판은 고증은 없을뿐더러 임진왜란(1592년)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지금 국가유산청에서 원형이라고 내세우고 있는 현판은 그로부터 273년 뒤인 흥선대원군 때 경복궁 중건(1865년~1872년) 공사책임자였던 포도대장 임태영이 쓴 것이다. 그나마도 6.25 한국전쟁 때 없어지고 박정희 대통령 글씨 현판이 내걸렸다.
임태영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천주교 탄압 사건인 '병인박해'에 앞선 '경신박해'를 철종 때 포도대장으로 주도한 행위로 사임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임성고 역시 '기해박해', '병오박해' 때 포도대장으로 천주교 박해사건의 중심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국가유산청이 고집하는 현판은 창건 당시의 원형도 아니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불타고 부실제작으로 금이가고 고증오류로 재제작을 되풀이해 오면서 누더기가 된 가짜현판을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답해야 한다.
유네스코 등재 훈민정음해례본이 답이다
처음부터 원형도 아님에도 한자면 원형이며, 무조건 ‘원형을 보존’한다는 낡은 생각부터 버려야 할 유산이다. 국가유산청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국가유산정책을 표방했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셨고, K컬처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글의 뿌리, 유네스코에 등재(1997년)되어 있는 훈민정음해례본 보다 더 적합한 국가유산이 어디에 있는가?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 가치로 국민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출범의 변으로 표방한 '미래가치 품은 국가유산!' 한글이 태어나고 세종대왕께서 이름 지으신 경복궁 광화문 현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훈민정음해례본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