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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혁한방]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헐버트 박사의 반박 이유
  • 편집국
  • 등록 2024-12-10 1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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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혁한방]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헐버트 박사의 반박 이유 


헐버트 박사의 갈파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나라'... 오랫동안 서구에서 인식하는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구에서 바라보는 좋은 뜻으로 알고 인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표현 속에는 조선을 왜곡하고 비하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140여 년 전부터 갈파하고 분노하며 반박해 온 분이 계셨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박사가 그분이다.


목숨을 걸고 한국을 사랑한 헐버트 박사의 삶은 독립운동가, 황제의 밀사, 외교관, 한글운동 선구자, 한국어학자, 역사학자, 민권운동가, 아리랑 채보자, 언론인 등으로 펜과 총을 넘나드는 광폭의 여정이었다.


그리피스와 <은둔의 나라>


1882년(고종 19년) 자연과학자 미국인 윌리엄 그리피스(W. E. Griffis)는 그의 책 <은둔의 나라 한국 Corea, The Hermit Nation>에서, 조선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라고 소개하였다. 책명 <은둔의 나라 한국>은 서구문명과 기독교에 문을 닫고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리피스는 1870년 '동경제대'의 전신인 '동경개성학교'에서 강의하는 자연과학자였다. 그는 이 책에서 조선에서 미신과 전제왕권을 몰아내고 서구문명과 기독교를 도입해야 하는데 일본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동아시아는 일본에 의해 근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선의 무능한 지배층 때문에 일본이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개혁을 이룰 수밖에 없었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조선을 위한 해방전쟁이자 일본의 희생적 전쟁이라는 논리로 일본의 시각을 대변하고 국권침탈을 정당화했다.


헐버트 박사 "제발 직접 와서 보고 쓰라"


이에 헐버트 박사는 "오류가 많고 왜곡, 편향이 너무 심하다”면서 "그리피스가 한 번도 조선(대한제국)에 와보지도 않고 일본에 앉아 자료들만 토대로 조선 관련 책을 썼다”라고 지적한 뒤 "제발 조선에 직접 와서 보고 조선 관련 글을 쓰라”라고 지적했다.


또 1902년 그리피스가 ‘한국, 난쟁이 제국(Korea, the Pigmy Empire)’을 통해, 'Pigmy Empire' 등 한국인을 미개하고 지능이 낮은 열등민족으로 표현했다”며 반박글을 기고했다. (1902년 7월호).


'고요한 아침의 나라' 표현 속에 숨은 의도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L. Lowell)은 1883년 한양에서의 약 3개월간 경험을 정리하여 1885년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를 출간하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제목에 썼다.


애당초 그리피스가 조선(朝鮮)이란 명칭에 붙인 해석은 영문 표기를 일본식 발음인 'chó-sen'으로 한 것부터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조선의 선은 고요할 선(禪)이 아니라 선(鮮)이므로 깨끗하다, 선명하다, 아름답다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리피스도 본문에서는 'The native name of the country is chó-sen (Morning Calm or Fresh Morning)'이라고 표기하고 있어 의도적으로 왜곡 또는 취사 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조선의 이미지를 '은둔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요하다'는 표현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The Land of the Rising Sun)' 일본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조선으로 만드는 것이 더없이 좋은 대비개념이었던 것이다.


'서광이 비치는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


이에 헐버트 박사는 ‘조선(朝鮮)’에 ‘아침 조(朝)’가 있으니 ‘Morning'은 맞지만 '밝다, 아름답다, 선명하다, 깨끗하다’는 뜻의 선(鮮) 자를 왜 ‘고요하다’는 ‘Calm’으로 해석했는지에 대해 반박했다. ‘고요한 아침’이 아니라 ‘서광이 비치는 아름다운 아침’이라는 뜻인 ‘Radiant Morning’이나 ‘Morning Radiance’로 수정해줄 것을 로웰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니 ‘은둔의 나라’니 좋은 의미로 인용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오늘날 대한항공의 상급 마일리지와 기내 소식지의 이름은 '모닝캄'이다. 구한말 시대와는 달리 희망찬 반전의 의미라고는 한다. 


굳이 원래 뜻이 그러하니 쓰지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물론 역설적인 의미로도 사용할 수도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헐버트 박사는 일본의 박해로 1910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 돌아가서도 한국 강제 점령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한국을 떠난 지 40년 만인 1949년 광복절에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땅을 밟았으나 1주일 만에 86세의 나이로 한국에서 숨을 거두었다.


워싱턴에서 출발 직전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초청장을 들고 AP통신 기자에게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한 뜻을 기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에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은 그에게 1950년 3월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2014년 10월 한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이유


헐버트 박사는 서거 한 달 전인 1949년 7월 미국 기자와의 회견에서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빼어난 민족”이라며 한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 근거로 '가장 완벽한 문자' 한글의 발명과 1919년 3·1 운동 때 보여 준 한민족의 충성심 등 5가지를 꼽았다. 평생을 한국과 한글에 헌신하셨던 헐버트박사께서 광복한 지 4년에 불과한 한민족을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이라고 확신한 이유가 광화문 한글현판 운동과 최근 시국상황 등 오늘날 대한민국에 많은 것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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