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혁한방] "영국인이 라틴어를 버린 것처럼..." 헐버트 박사의 예언
“19살 조선 청년이 F와 P의 발음을 구분 못하더니, 두 달이 지난 지금은 하루에 단어를 200개씩 외우고, 영어 해석과 회화도 완벽하다. 굉장히 놀랍다.” <코레아 또는 조선 : 고요한 아침의 나라>(1895년)
“조선 학생들의 영어 구사능력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뛰어나다” <고종실록> (1887년 5월 2일 자)
1886년 고종이 설립한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 육영공원 (왕립영어교육기관) 교사로 초빙된 23살의 미국 청년 헐버트(Homer B. Hulbert)는 깜짝 놀랐다. 고종과 학생들이 영어를 전혀 몰랐음에도 한글로 표기된 발음을 보고 영어 문장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헐버트 역시 4일 만에 한글을 읽었고, 내한한 지 불과 3년 만인 1889년 '선비와 백성 모두가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의 최초의 한글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했다. 서문을 통해 당시 지배층이 한글 대신 어려운 한자 사용을 고수하는 관행을 지적하면서, 한글이 한자에 비하여 배우기 쉽건만 오히려 업신여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밝혔다.
헐버트는 또 사민필지에 지구의 탄생과 기후에 대한 설명에서 부터 5대양 6대주에 속한 국가들의 위치와 면적,
산업, 교육, 풍속, 군사, 종교, 정치 등도 배우기 쉽게 담았다.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성서번역에만 관심을 두었지만, 청-일-러가 세상의 전부일 정도로 아직 세계 정세에 대해 잘 몰랐던 조선인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함이었다.
헐버트는 또 1898년 당시 뉴욕 최대 부수의 신문이었던 '뉴욕트리뷴’ (New York Tribune)에 “조선에는 모든 소리를 자신들이 창제한 고유의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완벽한 문자(true alphabet)가 존재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조선어’(The Korean Language)라는 글을 통해 한글과 한국어를 최초로 국제사회에 알렸다.
동시에 한글 자모까지 그려가며 최초로 한글의 언어학적 분석까지 실었다. "모음은 하나 빼고 모두 짧은 수평, 수직의 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한글 조합의 과학성은 환상적이다.”
1896년에는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신문이자 민간 신문이며 최초로 띄어쓰기를 도입한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한글판과 영문판 중 영문판 편집을 담당한 헐버트는 영문판 사설에서 “조선은 조선인을 위한 조선이어야 하고 (중간 생략) 한글을 쓰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교과서를 하루빨리 한글로 보급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최초의 영문 월간지인
“한국어는 대중 의사소통에 있어 영어보다 우수하다” <미국 스미소니언 협회 연례보고서> (1904년)
“문자의 단순성과 발성의 힘에서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국사> (1905년)
구전으로 전해지던 아리랑을 사상 처음으로 서양음계로 채보한 것도, 고종에게 건의하여 국문연구소를 설립하고 띄어쓰기, 쉼표, 마침표, 가로 쓰기 등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1903년에는 ‘훈민정음 서문’을 영어로 옮기기도 했다. 이렇듯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의 매력때문에 평생 한글 운동에 헌신했던 헐버트이지만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다.
"조선이 한글 창제 직후부터 한자를 던지고 한글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에게는 무한한 축복이었을 것이다."
무분별한 외국어와 시대착오적인 사대모화주의의 범람 속에 한글의 세계화와 광화문 한글현판 운동을 하면서, '중국과 일본에 한글사용을 권고'했던 헐버트 박사께서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하던 헐버트 박사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일갈했다.
"영국인이 라틴어를 버린 것처럼 조선인들도 결국 한자를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