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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안고 떠난 사람들, 디아스포라라는 이름 너머에서
  • 편집국
  • 등록 2025-06-27 08:59:26
  • 수정 2025-06-27 09: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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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안고 떠난 사람들, 디아스포라라는 이름 너머에서


니콜 오 (Nicole Oh)


UN 피스코 캘리포니아 어바인 SD

(전) 텍사스 FW 한인회장,

미주총연 교육정책위원장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는 뿌리를 잃고 떠돌며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서러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많은 ‘디아스포라’ 한국인들은 단지 흩어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뿌리를 품고, 삶을 다시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우리 한국인들이 역사의 어느 순간엔 떠밀리듯 강제로 이주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사할린, 만주, 일본, 중앙아시아 등지로 노동자 혹은 강제징용의 형태로 흩어졌다. 그중 상당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돌아오지 못했고, 뿌리조차 잃은 채 타향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인들은 더 이상 타의에 의한 이주가 아닌, 교육과 기회를 찾아 스스로의 선택으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이주는 두려움보다는 희망이었고, 망명보다는 확장이며 도전이었다.


나는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만난 한국인들 속에서 조국을 떠났지만 뿌리를 잃지 않았고, 흩어졌지만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뿌리 없는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뿌리를 품은 채 이동한 사람들이었다.


1990년, 나는 한인 청소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만난 청소년들의 삶의 태도와 그들의 글을 통해, 나는 문화적 차이와 공통점을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그 프로젝트는 외형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됨에 있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느끼게 해 준 소중한 계기였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도 내 안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문화는 분명 달랐다. 몸을 움직이는 방식, 관계를 표현하는 거리감, 삶을 대하는 언어의 결도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그들 안에서 느껴지는 고민과 갈등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흔들리는 시선,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도 다시 다가가려는 마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 이 모든 감정은 나로 하여금 “사람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닮아 있는 존재”임을 깊이 느끼게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흩어진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곳에 머물면서도 공통된 인간됨을 지닌 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디아스포라를 ‘연결된 사람들’이라 부르고 싶다. 컬럼비아대학교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문화에 따라 드러나는 모습은 다르지만, 청소년기의 혼란과 성장통은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이라고 했다. 이 말은 내가 만난 청소년들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은 유대 민족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 수천 년에 걸쳐 세계 각지로 흩어졌고, 떠돌이 민족이라 불려 왔다.


나라를 잃고 타지에서 차별을 견뎌야 했던 아픔도 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흩어진 땅에서 정체성을 지켜내며 경제와 문화의 중심에 다시 서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야말로 디아스포라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는 유대인의 여정을 떠올릴 때마다, ‘디아스포라’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흩어졌지만 연결된 존재”라는 개념으로 더욱 명확히 다가온다.


한국인들 또한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지키며, 그것을 기반으로 확장해 나가는 존재임을 나는 믿는다. 외형은 다를 수 있어도, 우리의 내면은 멀지 않다는 사실은 내게 깊은 위로이자 통찰이었다.‘디아스포라’는 단지 흩어진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제, 그것이 더 깊은 질문이자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단어임을 느낀다. “나는 누구인가?”“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나는 뿌리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흩어진 한국인은 디아스포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기억과 연결,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떠돌이로 머물지 않고, 서로를 잇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이 말은 문헌 속 이론이 아니라, 내 삶 속 체험을 통해 확인한 진실이다. 다를 수는 있지만 멀지 않다는 것. 그 사실은 여전히 내게 깊은 위로이자, 변하지 않는 진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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