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여사와 까치밥, 그리고 '한가We' [허준혁한방]
퓰리처상과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펄 벅(Pearl S. Buck, 1892~1973) 여사가 1960년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여행지 경주를 방문하던 그녀의 눈에 진기한 풍경이 발견됐다. 황혼 무렵, 지게를 볏단을 진 채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의 모습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간뒤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서양의 농부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소달구지 위에 짐을 모두 싣고, 자신도 올라타 편하게 집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농부는 소의 짐을 덜어 주고자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한 짐지고 소와 함께 귀가하는 모습을 보며 전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펄 벅여사는 따지않은 감이 달려있는 감나무를 보고는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거냐”고 물었다가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또한번 감탄했다.
“바로 이거에요. 내가 한국에서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펄 벅여사가 감동했듯 감이나 대추를 따더라도 '까치밥'은 남겨두는 것이 우리 민족이다. '배달의 민족'인 동시에 '배려의 민족'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씨앗을 심어도 셋을 심었다.하나는 하늘(새)이, 하나는 땅(벌레)이 나머지는 내가 나눠먹겠다는 뜻에서였다.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이다."
겨울철 까치를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고, 하루 종일 고생한 소를 위해 지게를 따로 지고 함께 걸어가는 한국인들의 '정' 가득한 심성을 보며, 펄 벅 여사는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THE LIVING REED 1963년)> 영문판 서문 첫 줄에 이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구한말부터 1945년 광복되던 때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작품은, <대지>이후 최대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펄 벅이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평가받는 것을 증명하듯 아리랑가사를 표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펄 벅 여사는 한국전쟁고아들을 위한 <새해(The New Year 1968)>, 한국에서 온 두 처녀(Love and the Morning Calm 1951) 등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집필하였다.
한국식 이름 '박진주'로 불리우기를 더 좋아할만큼(본인은 Buck,박진주를 원했지만 추가로 성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중국이름 寶珍珠을 대신하여 최진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
한국전쟁 후 태어난 혼혈아동들(Amerasian)을 보살피고 돕는 역할에도 많은 공을 세웠던 펄 벅 여사는, 1967년 9월 30일 혼혈아동을 위한 소사희망원을 개원하던 날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하였다. 1975년 문을 닫기까지 9년간 무려 1,500명이 넘는 혼혈아동들이 소사희망원을 거쳐갔는데 유명가수 인순이, 故 함중아씨 등도 포함되어있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의 다문화혼인은 전체혼인의 10.3%를 차지했으며, 2020년 출생아 100명 중 6명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다.
스스로를 '정신적 혼혈아'라 할만큼 평생을 혼혈어린이와 다문화가정사랑을 실천한 펄 벅 여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을 맞아, 펄 벅 여사의 박애정신을 다시 기려본다. 씨앗하나에도 배려하고, 소의 짐도 덜어주려는 '고상한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한가We'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