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에 '그 정도면 약과'? [허준혁한방]
우리 선조들은 씨앗을 심어도 셋을 심었다. 하나는 하늘(새), 하나는 땅(벌레), 하나는 내가 나눠 먹겠다는 뜻에서였다. 감을 따더라도 '까치밥'은 남겨두는 게 우리 민족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대지>의 펄 벅 여사가 1960년 11월 한국방문 당시 따지 않은 감이 달린 감나무를 보고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고 물었다가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둔 까치밥”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크게 감동을 하여 책에 후술하기까지 했다.
새해를 시작하는 설날 차례상에는 반드시 감이 놓여 있다. 남녀의 유골을 구별하는 방법의 하나로 뼈 색깔이 짙으면 여성이라고 한다. 여성은 아기를 낳으면서 철분이 많이 빠져나가 뼈가 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감나무 역시 감을 한 번도 맺지 않은 나무는 나뭇가지 속에 검은 신이 없고, 감이 열린 나무는 검은 신이 있다. 감을 차례상에 놓는 것도 이러한 감의 속성이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와도 같기 때문이다.
감의 씨앗을 심으면 바로 감나무가 나지 않고 돌감나무라고도 불리는 고욤나무가 난다. 3~5년쯤 지났을 때 고욤나무를 칼로 벗긴 다음 눈이 달린 감나무 가지를 접을 붙여 칭칭 감아둔다. 그러면 표시가 나지 않게 붙으면서 감이 열린다.
이같은 감접 붙이기에서 '감쪽같다'는 말이 유래됐다. '감접같다'가 ‘감쩝같다’로, 다시 ‘감쩍같다’로 변화하다가 '감쪽같다'로 변했다는 것이다. 곶감의 쪽이 달고 맛있어서 빨리 먹어 치우고 흔적을 없앤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도 설날에서 유래한다. 선조들은 꿩을 ‘하늘닭’이라 해서 길조로 생각했다. 수컷을 장끼, 암컷을 까투리, 새끼를 꺼병이라 부른다. 까투리가 알을 품고 있을 때는 사람이 지나가거나 소리가 나더라도 움직이지 않아 잡히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모성애가 강하다. 강원도 치악산 상원사의 '은혜 갚은 꿩'이야기도 유명하다
설날 대표 음식인 떡국에 꼭 들어가던 것이 꿩고기다. '꿩 대신 닭'이란 말도 떡국에 넣어야 제맛이 나는 귀한 꿩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어 떡국을 끓였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시치미 떼다'는 말도 꿩과 관련한 또 다른 속담이다. 고려 시대 때 매를 이용해 꿩을 잡는 매사냥이 성행했다. 사냥 매에는 자기 것임을 표시한 '시치미'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도둑들이 이 시치미를 떼고 자기 매라고 우긴 데서 유래했다.
'그 정도는 약과'란 말도 명절에서 유래했다. 꿀과 기름 등으로 만든 약과는 제사상 중에서도 귀한 음식이었다. 그 귀한 약과를 손님들이 집어먹자 차마 말을 못 하고 애를 태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약과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음식이나 집안 물건 등을 먹거나 챙기는 욕심 많은 손님들도 있어 차라리 약과 정도면 다행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떡국은 길게 뽑은 가래떡처럼 오래 살라는 의미와 함께 엽전처럼 생긴 떡을 먹으면서 더욱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의미도 안고 있다.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하여 첨세병(添歲餠)이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도 해가 아니라 생일이 기준이 되어 설날 떡국을 먹더라도 생일이 아니면 나이와는 상관없게 되었다.
설날에서 유래된 속담들을 되뇌다 보니 그간의 한국 정치가 연상되는 건 나만의 편견일까? 현란한 말로 '감쪽같이' 속이거나 수시로 말을 바꾸고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 다반사인 게 '정치판'이다.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며 '덜 나쁜 정치인을 뽑는 것'이라는 '꿩 대신 닭'과 같은 상황임에도 '그 정도면 약과'라고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새해는 달라지겠지?' 그래도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