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혁한방] K-새해인사와 K-설날인사, 일본식 표현 '근하신년'
설날, 구정, 민속의 날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설날(음력 1월 1일)과 한가위(음력 8월 보름)를 연중 가장 큰 명절로 지냈다. 그러나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일제 강요에 의한 을미개혁에 따라 1896년부터 전통적 명절인 설날 대신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고 하여 양력설을 강요당했다.
이완용 등 일본앞잡이들은 양력설에 총독이나 관리들에게 일본인들이 잘 쓰는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고 쓴 연하장을 보내며 아부를 떨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일본설’이라 반발하며, 음력 정월 초하루에 조상들께 절을 드렸다.
해방 이후에도 양력 중심의 행정에 따라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구분했지만, 일반 가정에서의 음력 1월 1일 설날 문화는 계속되었다. 결국 1985년부터 설날을 ‘민속의 날’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하였고, 1989년부터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2023년부터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본식 표현 '근하신년'
설날 즈음에는 '근하신년(謹賀新年)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으로, 새해의 복을 비는 인사말"이라고 되어있다. "근하"와 "신년"이라는 말은 각각 조선왕조 때도 썼지만 "근하신년"이란 말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근하신년"은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식 표현이다. 일본국어사전 <大辞林>에는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연하장 등에 쓰는 인사말"이라고 되어 있다. 일본은 현재도 인구가 1억 2천5백만 명인데 연하장은 10 억장씩 찍어낼 정도로 연하장의 나라이다.
세함, 세화, 문안단자
선조들은 설이 되면 서로 세배를 다니다 보니 엇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온 풍속이 세함(歲銜)이었다. 백지로 만든 책과 붓, 벼루를 비치해 두면 이름을 적어두고 갔다. 이를 통해 집을 비운 사이에 누가 다녀갔는지 알 수가 있었다.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인편으로 명함이나 문안단자(問安單子) 등의 서찰을 보냈다. 십장생 등이 그려진 세화(歲畵)를 선물하기도 했다.
1월을 정월(正月)이라 부르는 이유
새해 아침에 "근하신년"이라는 뜻도 제대로 모르는 일본식 표현보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라는 전통적이고 알기 쉬운 우리식 인사를 나누는 것이 훨씬 정겹다.
"일출(日出)" 이란 말대신 "해돋이", 송년회 대신 해넘이 잔치 등 우리말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신년회나 신년하례회 등도 새해인사회(잔치), 새해맞이 인사회(잔치) 등 멋진 우리말로 바꾸어 나가야 할 일이다.
선조들은 새해 첫날을 '정월 초하루'라 부르며 설날 첫날부터 새해 내내 정직하고 바르게 살기를 다짐했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빚독촉도 하지 않을 정도로 여유와 배려가 있어온 게 우리 민족이었다.
K-새해인사, K-설날인사
아직도 설날이란 이쁜 우리 이름을 놔두고 구정이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신정과 구정은 서로 대비되는 말이다. 구정이 없어지고 설날이 되살아났으니 신정은 '새해 첫날'이 맞다. '새해 첫날은 새해 첫날이고 설날은 설날이다.'
영어권에서는 새해인사가 사실상 "Happy New Year"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단조롭다. 새해 아침, 새해 인사 역시 저마다 다양하고 독창적인 K-건배사처럼, 해마다 띠마다 젊은 감각의 순우리말 새로운 K-새해인사, K-설날인사를 기대해 본다.
푸른뱀의 새해는 좋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2025 꼬꼬무 새해'가 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