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금배지'가 거꾸로 도는 이유 [허준혁한방]
흔히 ‘금배지’로 불리는 국회의원 배지는 무궁화 형상안에 한글돋움체로 '국회'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국회 한글화를 위한 한글 단체와 시민들의 오랜 요청에 따른 것이다. 99%의 은에 공업용 금을 입혔으며 지름은 1.6㎝, 무게는 약 6g으로 배지마다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 처음엔 무료지만 분실이나 추가주문시에는 3만5천원을 내고 구입해야 한다. 순금 뱃지를 원하면 국회사무처에 신청을 하면 순금 제작도 된다.
1950년 제2대 국회부터 사용되기 시작해서 무궁화 형상과 그 안의 글자가 조금씩 10차례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1960년 5대 국회때 한자 '國' 대신 한글 '국'으로 바꿨지만 종종 거꾸로 돌아 '논'자가 되곤 하다보니, 국회가 '노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에 6대때 한자로 잠시 돌아갔다.
그러나 한자 '國' 역시 '의심할 혹(或)'자로 보인다는 의견에 무궁화 안의 동그라미가 네모로 바뀌었다가 2014년부터 한글로 '국회'라는 두 글자를 모두 넣게 되었다.
중국 한나라 때 향거리선제(鄕擧里選製)라는 관리임용법이 있었다. 지방의 인재를 중앙에 천거하는 형식으로, 당시 지방행정구역이 군-현-향-리의 순이었던 데서 향거리선이란 이름이 비롯되었다. 천거받았다고 바로 임용된 것이 아니라, 다시 중앙의 시험을 거쳐야 선발됐다. 후보로 천거(거 : 擧)하면 가려뽑았던(선 : 選) 것이다.
선거(選擧)라고도 불렀지만, 현재의 선거와는 개념에서 부터 많은 차이가 있다. 위나라 때 구품중정제, 수나라 때 과거제(科擧制)가 도입되기 전까지 관리를 선발하는 방법이었다.
인물평가과목은 효성스럽거나 청렴한 효렴(孝廉), 어질고 착한 현량(賢良), 품행이 바르고 곧은 방정(方正), 간언을 잘하는 직언(直言) 등이었다.
오늘날 국회의원을 선량(選良) 또는
현량(賢良)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선택현량(選擇賢良)'의 줄임말로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뽑는다는 의미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기준과 기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양에서 선거(election)와 엘리트(elite)의 어원이 같다는 것도 '선택현량(選擇賢良)'과 맥을 같이 한다. 라틴어로 '뽑다', '가려내다' 등의 뜻을 가진 Eligo, Eligere가 어원으로, 능력있는 엘리트(elite)를 뽑는 것이 선거(election)라는 의미이다.
출마후보자를 뜻하는 캔디데이트(candidate)는 로마시대에 원로원의 집정관 후보가 캔디드라는 하얀 옷을 입었던 데서 유래한다. 하얀 옷은 정직과 청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예비후보 등록과 함께 선거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선거구획정도, 선거제 개편도 되지않은 상태이다. 게임룰도 운동장도 정해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들만 입장한 격이다.
예비후보 제도는 현역 의원에 비해 불리한 정치 신인들에게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이라도 최소한의 선거운동을 보장해주기 위해 2004년 도입한 제도이지만 현역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년 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끝내야함에도 법정기한 8개월이 지나도록 '놀고' 있다. 중대선거구 도입 같은 정치 개혁 논의는 아예 실종되고 말았다. 비례대표는 방식 조차도 정해지지 않았다.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 개편이 늦어질수록 예비 후보들의 피선거권과 유권자들의 참정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선수’로 뛰는 거대정당들이 그들에게 유리한 게임룰까지 정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관직에 임명된 현량과 달리 무과에 급제하지 못한 무반(武班)은 ‘한량(閑良)’이라고 불렀다. 명산대천을 다니며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 마치 노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돈 잘 쓰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을 한량이라 부른다.
한(閑) 자는 '한가하다' '가로막다' '문지방'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문지방 높은 국회에 '한량'이 너무 많다.
선량(善良)한 국민들 덕분에 국회로 간 선량(選良)들이 집단 한량이 된 듯 하다. 더욱 엄격히 가려 뽑아야(選) 할 이유이다. 국회의원들의 배지가 '논'자가 되는거나 '의심할 혹'자로 보이는 것이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