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서는 어떤가?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정책은 아닐 것이라는 단언이 가능하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도 다를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변화의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단기적으로 북한과 속도감 있는 비핵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휘몰아친, 미국에는 특히 더 엄혹한 현실이 되어버린 코로나 감염의 광풍을 먼저 잠재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부적 분열과 인종차별 혼란을 수습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국제위상 하락, 글로벌 리더십 약화, 동맹으로부터의 신뢰 약화 등을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 이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북한의 비핵화에 신경을 집중시킨다고 해도 북한에 우호적인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이 그들 스스로 설정한 원칙에 충실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토론 시 바이든은 김정은을 ‘폭력배’로 지칭했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세번이나 하고도 북한으로부터는 확고한 약속을 하나도 받아내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북한이 핵을 확실히 내려놓는 데 동의한다는 조건에서만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기조가 쉽게 바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바이든을 둘러싼 외교정책 추진자들이 더 강력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토니 블링컨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제이크 설리번은 모두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블링컨은 단계적 비핵화에 접근하고 있지만, 방점은 대북 제재 강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협상을 ‘최악의 거래’라고 평가하면서, 북한이 먼저 모든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국제적인 감시 하에 우라늄 고농축과 재처리 인프라를 동결하는 동시에, 핵탄두와 미사일 제거를 보장하면 일부 경제제재 해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설리번도 마찬가지다. 북한 핵 능력 억제를 최우선시하고 있다. 지난 대선 시 “북한이 진지하게 핵 협상에 임하게 할 유일한 방법은 북한을 급격하게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북한이 핵 동결 선언만이 아닌, 핵 폐기와 검증에까지 이르러야 대미 접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상과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대미 정책과 관련한 북한의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의 코로나 상황 극복과 국내외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올 3월 한·미연합훈련의 전개 양상을 예의 주시하면서, 북·미 대화를 희망하는 것이다.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해 7월 10일 성명을 통해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라는 조·미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 부부장은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하여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남한의 대화 요청에도 응하는 상황을 연출할 가능성도 있다.
남북관계 진전을 원하는 우리로서는 북·미관계의 향방이 중요하다. 남북관계가 진전하려면 북·미관계가 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과 북·미 대화의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설 경우, 북한의 대미 정책선택 폭은 그만큼 더 커질 것이다. 임기 5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는 시기를 대미 설득의 기회로 삼아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해야만 한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미관계 진전을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동시에 긍정적으로 진전할 수 있도록 대미 정책적 연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