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새로운 길의 전략과 북미협상 전망
박종철(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1. 북한의 새로운 길의 전략과 딜레마
북한은 연말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분주했다. 동창리에서 미사일엔진실험을 하는가 하면, 4일 동안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전원회의 결정서로 신년사를 대체하였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대내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정면돌파를 내세우고 이를 위해 핵억제력 강화, 자력강화(자력부강, 자력번영), 당지도력 강화에 역점을 두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한 전원회의의 결정은 우려와 달리 핵실험·미사일 발사 재개, 북미대화 중단 선언 등과 같은 레드 라인은 넘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과 ‘충격적 실제행동’을 언급함으로써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대북제재의 지속과 북미대화 교착상태의 장기화를 예상하면서 대화의 문은 열어 놓되, 장기전 대비, 전략무기 개발, 선 적대시정책 철회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김정은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을 이끌어내고 화려하게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았다. 2019년 신년사는 북미대화 및 남북관계 진전에 대해 기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2019년 초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절치부침하며 번민의 시간을 거쳐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은 2년 동안의 북미대화에도 불구하고 기대와 달리 대내외 환경이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미국을 신뢰할 수 없고 북미협상의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제재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원회의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남북협력도 실질적으로 어려우며 한국의 조정 역할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내외 난관에 직면하여 선택한 목표는 ‘국가생존과 버티기’이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직면하여 국가생존이 최대의 목표이며, 제재로 인한 난관을 자력강화로 버티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생존과 버티기를 위해 택한 전략은 정면돌파이다. 전원회의 보고에서 정면돌파라는 표현이 23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북한은 전방위 압박에 대해 우회전략을 택하거나 굴복하거나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라는 옵션을 택했다. 김정은위원장이 백두산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전의를 다짐한 것이 정면돌파 전략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원회의는 각론에 해당하는 주요 과제로 세 가지 정책목표를 제시하였다.
1)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핵억제력 강화를 설정하였다. 비핵화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는 대신, 생존의 최후 보루로 새로운 전략자산 개발을 포함한 핵억제력 강화 노선을 천명하였다.
2) 제재에 대해 자력강화(자력부강, 자력번영)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제재로 인해 단번 도약이 어려운 실정을 감안하고 대내적 자원의 동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전원회의에서 많은 부문을 할애한 경제문제는 국가부문과 시장의 공존으로 인해 발생한 경제관리문제를 시정하려는 문제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가상업체계 및 사회주의 상업의 복원, 불필요한 절차 및 제도의 정리, 사업능률 저해 요인 시정, 전문 건설역량의 확대 강화와 건설장비 현대화,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의 현실화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였다. 이것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충돌·갈등하는 문제가 북한 경제의 최대 난제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경제관리개선의 방법으로 국가의 통일적 지도력 강화, 내각의 조정·관리 역할 강화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2020년에 완료하기로 예정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주목된다. 현실적으로 국가발전 전략의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10대 전망 목표를 제시하였다. 또한 김정은위원장이 집권후 강조한 ‘인민생활 향상’에 대한 언급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자력부강, 자력번영을 하겠다“고 함으로써 인민희생이 불가피함을 공식화하였다.
3) 대내적 결속력 강화 및 통치전략으로 당의 지도력 강화를 통해 국가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위원장의 집권후 강조된 당국가체제의 복원과 당의 지도력의 강화, 정치사상 및 정치교양 강화에 의해 대내결속력과 통제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의 새로운 길은 희망에 찬 미래 비전이나 공세적 목표 달성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지구전에 대비하여 방어전선을 구축하고 내핍을 통해 버티자는 수세적 길이다. 새로운 길은 곳곳에 장애요인과 딜레마가 잠복해 있다. 첫째 과제인 핵억제력 강화는 레드 라인을 넘어설 경우 미국의 군사적 행동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 강화 등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밀한 계산 하에 임계점을 넘지 않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 둘째, 자력강화는 제재에 직면하여 택할 수 밖에 없는 궁색한 옵션이다. 제재 하에서 국가와 시장의 공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여러 행위자의 이익이 얽혀 있는 민감한 문제이다. 더욱이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철회한 대신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 맬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인민들의 반응은 냉담할 것이다. 셋째, 당과 내각의 지도력 강화는 지역·기관·기업소의 분권적 경향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으며 생산, 분배, 유통과정에서 중앙집권화와 분권화 경향이 충돌할 수 있다.
북한의 국가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새로운 길은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김정은정권은 출범 이후 핵억제력 강화와 경제발전이라는 2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놓고 고민해 왔다. 김정은정권의 첫 번째 전략은 2013년 발표된 경제발전·핵무력 병진노선이었다. 경제발전을 추진하면서 핵무력 발전을 동시에 병행하겠다는 공세적 비전이었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에 의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자신감에 찼다. 핵보유국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은 2018년 북미대화를 추진하며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경제건설 집중전략을 두 번째 전략으로 선언하였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비핵화협상을 하며, 자원을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제재해제에 의해 단번 도약을 하려는 야심 찬 국면전환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2020년 북한이 세 번째 국가전략으로 제시한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병진노선이라는 과거의 길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비핵화와 경제발전을 추진하던 두 번째 전략을 일부 수정한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새로운 길은 과거의 길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일종의 복합적 시도이자 과도기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길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점에서 핵보유 이전에 채택했던 병진노선과 다르다. 또한 새로운 길은 북미협상을 배제하지 않다는 점에서 북미대화가 없었던 시기의 병진노선과는 다르다.
또한 새로운 길은 북미대화에 역점을 두며 경제건설에 매진하려는 경제건설 집중전략과도 다르다. 새로운 길은 장기전에 대비하여, 핵억제력 강화를 추진하며, 내핍을 견디겠다는 방어적 전략이다. 새로운 길은 핵능력을 바탕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자력강화에 의해 장기전에 대비하되, 대화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복합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길은 대내외 환경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국가능력을 점검하고 전략적 선택지를 검토하는 신중함과 치밀함을 보인다. 또한 새로운 길은 목표, 전략, 과제를 제시하면서 환경변화에 따라 다른 가능성을 열어 두는 전략적 신축성과 융통성을 보인다. 북한은 향후 미대선 동향, 한반도 정세, 한국의 정치 상황, 미·중관계, 중·러의 북한지지 정도, 중동 상황 등을 염두에 두고 정책 선택의 폭을 가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2. 북, 미의 비핵화 셈법과 전망
새로운 길에 나타난 대미협상전략은 선 대북적대시정책 철회(군사위협 제거, 대북제재 해제) 후 비핵화이다. 하노이 회담시 제시했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입장보다 강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전원회의 보고에 의하면,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고,,,,, 미국이 대조선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며,,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 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할 것”라는 것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단계적·동시적 입장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평가는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도 나타났으며 전원회의는 이러한 평가가 종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불만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 및 핵시험장 폐기의 선제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지속, 첨단 군사장비의 반입, 10여 차례 단독 제재 실시 등으로 대북적대시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 대북적대시정책 철회 입장은 대미압박용이거나 협상에 대비한 지렛대 일 수도 있고, 협상의 마지노 선일 수도 있다.
전원회의 보고에서 북미협상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쟁점은 세 가지이다.
1)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전략무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전략무기는 인공위성 발사, SLBM 시험발사, 고체엔진 ICBM·다탄두 ICBM 발사 등일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반응과 한반도정세 등을 감안하여 북한의 중요 정치행사나 동계군사훈련, 한미연합군사훈련 기간 등에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일 수 있다.
2) 북한이 언급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이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충격적인 실제행동은 수사적 압박에 그칠 수도 있고 어느 시점에 실행될 수도 있다.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동향, 미국의 향후 반응, 미 대선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북한의 행보가 결정될 것이다.
3) 북한이 대화기간으로 설정한 2019 연말 시한이 지났지만 사실상 대화시간을 연장하면서 미국과 대화 여지를 남겨놓았다. 북한은 미국이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핵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전략적 신축성과 운신의 폭을 가지려고 하였다. 핵심은 북한이 핵억제력 강화와 북미대화를 병행할지, 아니면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고 나 홀로 가는 길을 택할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일단 공을 미국에 던져 놓고 미국의 대응과 정세변화를 고려하면서 대응 수위를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트럼프대통령의 셈법도 복잡하다. 트럼프대통령은 대선에 총력을 기울어야 하는 상황에서 탄핵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다. 중동문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으며 유일한 외교적 성과로 내세웠던 북한과의 대화가 기로에 놓여 있다. 트럼프대통령은 대선에 올인하기 위해 북핵문제의 상황관리가 필요하다. 북한이 핵실험 재개나 ICBM 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할 경우, 트럼트대통령은 이를 묵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력대응 카드를 꺼내기도 여의치 않다. 또한 북한의 요구대로 스몰 딜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 여론으로부터 배드 딜로 비판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트럼프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과 같은 레드 라인을 넘지 않도록 경고하면서, 압박수단을 보유하되 대화여지를 남겨 놓는 상황관리정책을 선호한다.
북, 미의 셈법을 고려하면, 두 개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다.
시나리오 1(상황관리와 대화모색): 양측이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적절한 수준에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하면서 체면유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미국도 압박카드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대화를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기간에 즈음하여 군사적 긴장이 조성될 수도 있다. 북, 미가 압박카드를 시사하고 말폭탄을 주고받음으로써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양측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올해 전반기 적절한 시점에 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시나리오 2(긴장고조와 새판짜기): 북한이 인공위성발사,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 등을 통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미국이 제재 강화, 정찰비행, 무력시위, 한미연합군사훈련 강화 등으로 대응함으로써 위기가 심화되는 것이다. 위기상황이 고조된 뒤, 새로운 협상이 모색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미 대선이 끝나고 대북정책이 정해진 2021년 전반기 새로운 판짜기가 시도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올 상반기는 기싸움을 하며 대화를 탐색하는 숨고르기 기간이거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과도기일 수 있다.
3. 정책적 고려사항
북한의 새로운 길과 미국의 대선 국면이 맞물리면서 한반도정세가 앞을 예측하기 힘든 미세먼지로 덮혀 있다. 우선 한반도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 전략이 필요하다. 북미협상의 교착상태의 장기화나 파국을 막고 북미협상 재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올 상반기 긴장악화를 방지하고 한반도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위기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한·미간 정상을 포함한 각급 외교 채널을 동원하여 북미 대화의 공간을 복원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비핵화의 목표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단계 조치로서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시기·규모의 조정, 대북제재의 부분적 완화 등을 맞교환하는 디딤돌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북대화의 창구를 가동해야 한다. 2018년 북미협상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남북회담이 돌파구를 열었던 것과 같은 국면전환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남북대화 채널을 가동하는 한편, 특사파견 등 각종 대화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또한 2020 도쿄올림픽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한반도정세의 안정화가 필요한 점에 대해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 일 뿐만 아니라 중, 러와 협력하여 한반도평화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체육교류 등을 추진하는 것도 대화 복원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