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남북경제협력의 꽃’으로 불렸던 개성공단이 가동을 중단한 지 만 4년을 맞았다. 그동안 대북 제재가 더욱 강화된 가운데 북핵 협상도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14년 운영 후 기약 없이 중단
17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개성공단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8월 현대아산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시작됐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을 결합해 남북경제협력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취지였다.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개성공단은 확장세를 멈췄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등으로 가동 중단 위기가 여러 번 반복되며 개성공단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됐다.
박근혜정부 시절 개성공단은 잠시 중단됐다가 재개된 뒤 외국기업 유치 추진 노력도 있었지만, 결국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당시 입주 기업은 설비 등을 모두 남겨둔 채 쫓기듯 공단을 빠져나왔다.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는 “개성공단 문을 닫고 나서 약 30개 기업은 베트남 등 외국으로 옮겼다”며 “해외에 투자하려면 사전 조사를 하고 가야 하는데 기존 주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급작스럽게 간 것이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후 국내 경기까지 안 좋아 기업들이 더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재개 걸림돌 산적
개성공단 중단 4년째를 맞은 지난 10일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와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경제협력 재개를 정부와 미국에 촉구했다.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운영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 보내는 서한도 통일부에 전달했다.
다음 날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도 남북 관련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가하는 ‘개성공단 재개 촉구 대회’를 열고 북측과 개성공단 재개 여건·환경 마련을 위한 실무협의를 공식 제안했다.
사회 각층에서 개성공단 재개 노력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갈수록 기약이 없어질 것이라는 절박한 심정에서다. 문재인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개성공단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지만 북핵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며 공단 재개 논의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개성공단에 대한 국내외 여론도 식어가고 있다.하지만 개성공단 중단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더욱 촘촘해지면서 개성공단 문제는 더욱 꼬인 상태다. 벌크캐시(대량현금)의 북한 유입을 차단하고, 북한에 대한 투자와 합작 사업 신설을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위반될 수 있다는 우려는 개성공단 재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향후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관건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낮은 단계에서라도 의미 있는 합의가 나올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개성공단은 매우 중요한 유엔 제재 합작사업 중 하나로, 재개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적절치 않다”며 “미국 대선이 있는 11월까지는 북·미 간 합의가 힘들어질 것이고, 대북 제재가 완화되려면 북·미 협상 진전과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하면 20~30배 회수… 다시 가길 원해"
“개성공단은 ‘퍼주기’가 아니라 압도적인 ‘퍼오기’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기업들은 경제적 부가가치 측면에서 개성공단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이사장은 “개성공단 가동 당시 기업이 1을 투자하면 20, 30을 가져왔다”며 “한결같이 다시 들어가길 원하는 것은 해외에 그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개성공업지구법이 정한 개성공단 관리와 운영 책임기관이다. 14년간 개성에서 북측과 일하면서 인적 유대와 기본 신뢰가 쌓였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그는 “(중단) 4년 계기로 했는데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진심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며 “당국의 관계는 단절돼 있지만 모든 것을 끊어선 안 된다. 시민사회 등 당국 외의 사람들이 많이 뛰어주면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개성공단이 시작된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관련 업무를 맡고 이후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서 일하며 남북관계의 진행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개성공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맺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옥동자”라며 “개성공단 가동이 재개되는 것은 남북관계의 시금석”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개성공단은 남북이 평화를 구현한 바탕 위에 만든 것이 아니라 군사적 불신, 적대를 넘기 위해 경제협력 방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실제로 해보니 평화도 만들어지고 돈도 벌렸다는 증거가 됐던 것이 개성공단”이라며 “이런 가치들이 국민에게 전달되면 공단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