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베토밴이 귀머거리가 된 이유와 술 권하는 사회 [허준혁한방]
  • 편집국 편집국
  • 등록 2024-06-14 12:27:10

기사수정

베토밴이 귀머거리가 된 이유와 술 권하는 사회 [허준혁한방]


베토밴이 귀머거리가 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술자리에서 옆사람 술잔이 빈 줄 모르고 따라 주지 않았다가 옆사람에게 귓방망이를 맞았기 때문이다. 심봉사가 장님이 된 이유를 아는 사람 역시 드물다. 앞사람 술잔이 빈 줄 몰랐다가 젓가락으로 눈을 찔렸기 때문이다.


물론 술자리 우스개 소리다. 코로나19 이후 술잔을 돌리는 문화는 없어졌지만, 술잔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따라주는 우리 특유의 수작(酬酌) 문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이다.


수작은 갚을 수(酬), 부을 작(酌)으로 주인이 술을 권하는 것이 수(酬)이며 손님이 다시 따라주는 것이 작(酌)이다. 그러나 술잔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음모나 비리가 생기면서 '수작을 건다' '허튼수작' 등 불순한 의도를 지닌 행위로 의미가 변질되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서로 잔을 마주하여 마시는 대작(對酌) 문화, 서양은 자기 술잔을 스스로 부어서 마시는 자작(自酌) 문화이다.


술 주(酒) 자는 물 수(水) 자와 닭 유(酉) 자로 이뤄져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술은 닭(酉)이 물(水)을 마시듯 조금씩 즐기라는 뜻으로, 닭이 잠자러 가는 시간인 유시(酉時 : 오후 5~7시)에 잠깐 마셔야 제 맛이라고 풀어내기도 한다.


닭 유(酉) 자는 ‘술 항아리’를 그린 것이기도 하다. 따를 작(酌) 자는 닭 유(酉) 자와 술 따위를 풀 때 사용하던 구기 작(勺) 자가 합쳐져 술병에 있는 술을 국자로 퍼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작(酌) 자가 들어간 말들은 술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


짐작(斟酌)은 술이 안보이는 도자기나 청동 등으로 만든 술잔이 양을 가늠하기 어려워 어림잡아 적당히 따른 데서 나온 말이다. 짐(斟) 자는 어림잡아 헤아린다는 뜻이다.


작정(酌定)은 ‘따르는 술의 양을 정한다’는 뜻이다. 무작정(無酌定)은 양을 정하지 않고 따르는 바람에 술잔이 넘치는 데서 나왔다.


참작(參酌)은 주량을 헤아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알맞게 따라주는 것이다. 정상참작(情狀參酌)도 같은 맥락에서 유래되었다.


그러고 보면 수작, 참작, 작정 등의 원래 뜻은 헤아림이다. 상황을 살피면서 상대의 사정까지 헤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한 대가로 주는 돈을 의미하는 보수(報酬)는 ‘보답하는 뜻에서 술을 한잔 따라준다’는 데서 유래한다.


주전자(酒煎子)는 술을 데우는 물건, 안주(按酒)는 누를 안(按)으로 술기운을 누르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술은 순우리말이다. 고주망태도 순우리말이다. 고주(아래 아)는 누룩이 섞인 술을 뜨는 그릇, 망태는 무엇을 담는 그릇이나 쓸모없이 되어버린 상태를 뜻한다. 두 말이 합쳐져 술통을 통째로 마신 것처럼 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우리 백성들은 정을 나누는 마음을 귀하게 여겨 술 권하는 문화가 생활화되었으며 술자리에도 법도가 있다.


술을 따를 땐 안주를 먹고 있어서는 안되며, 술을 받을 때 말을 하고 있거나 술잔을 상에서 떼지 않고 받아서는 안된다. 술이 안주에 쏟아졌을 때는 안주를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안주가 술에 빠졌을 때는 그 술은 버린다.


겉모습은 눈으로 볼 수가 있지만 속마음은 술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말은 할 탓이요 술은 먹을 탓"이라고 했다. 말은 하기에 따라 술은 먹기에 따라 행동이 다르게 되므로 본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마시라는 뜻이다.


말을 안 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일이며, 말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술을 권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술을 권할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백성의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 귀머거리와 권력과 돈에 눈이 멀어 백성들이 보이지 않는 장님들이 너무 많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술 권하는 사회'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술이 '술술' 넘어간다고 너무 '작작(酌酌)'마셔도 안될 일이다.


'공경하다' '우러러보다'는 뜻을 지닌 높을 존(尊) 자는 묵은 술 추(酋) 자와 마디 촌(寸) 자가 결합하여 잘 익은 술의 향기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권력과 비리의 썩은 냄새가 아니라 세종대왕처럼 애민의 향기가 널리 퍼져 나오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유니세프 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