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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표준어정책 "사투리를 살리자" [허준혁한방] ​
  • 편집국
  • 등록 2024-08-20 21: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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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표준어정책 "사투리를 살리자" [허준혁한방]


쭈꾸미, 꼼장어, 깡총깡총, 오돌뼈, 어줍잖다의 공통점은? 비표준어, 즉 '틀린' 말이다. 주꾸미, 곰장어, 깡충깡충, 오도독뼈, 어쭙잖다가 '정답'이다. 그렇다면 짜장면과 자장면은 어느 게 표준어일까? '정답'은 둘 다 표준어이다.


"짜장면이 자장면이면 짬뽕은 잠봉이냐" 짜장면이 맞춤법에 어긋난다는 데 대한 불만과 비난을 상징적으로 함축하는 표현이었다. '뻐쓰'라 발음하고 표기는 '버스'라 하는 것처럼 발음은 '짜장면'으로 하고 표기는 '자장면'으로 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국립국어원이 2011년 짜장면과 자장면을 모두 인정하는 복수표준어라는 묘안을 짜내면서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먹거리도 이날 복수표준어에 포함되었다. 그전까지는 동사의 어근만을 떼어 합성어를 만드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로 '먹을거리'만 표준어로 인정했었다. 하지만 먹거리를 쓰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자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었다. 현재도 '공식' 표준어는 아니지만 '잘못' 사용되는 단어들이 많다. 이들 단어들이 표준어에 포함되도록 기다리는 게 맞을까? 안 쓰는 게 맞을까?


표준어 정책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지만, 일본은 패전 이후 표준어 정책을 버렸다. 물론 표준어는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체계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뜻에서 비롯된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지금은 달라졌다. 사실상 세계공용어가 된 영어도 국가가 지정하는 표준어가 없다. 말에 대한 검열을 국가에 맡길 수는 없으며 맡겨서도 안된다. 다양한 언어 환경 속에서 시민들이 집단지성으로 언어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언어의 지역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복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랜 세월 지역사회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음에도 '고쳐야 할 말' '잘못된 말'로 인식되어 온 사투리의 복원과 활성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표준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투리에는 지역의 정서와 문화가 잘 녹아 있다. 사투리를 억제하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억제하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사투리는 우리말의 옛 모습도 많이 담고 있다. 중세 국어 성조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같은 단어라도 의미구별이 훨씬 분명하고 활용성이 높다. 훈민정음해례본도 글자 옆에 방점을 찍어 성조를 표시했다. '2의 2승, 2승 e승, e의 2승, e의 e승'같은 경우는 사투리만이 구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다.


사투리에는 지금도 아래아( • ),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 이응(ㆁ), 순경음(ㅸ) 등이 발성되고 있다. 훈민정음에서 빠진 글자들이 복원될 때, 소리글자이자 발음기호로서의 본연의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더구나 외국어 표기와 발음을 위해서도 더 이상 늦지 않게 복원해야 한다.


무작정 사투리를 사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모든 언어는 그 자체로도 존재가치를 지닌다. 사투리 역시 표준어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표준어 강요는 언어의 획일화이자 사고의 획일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1988년에 표준어 규정을 정비하면서 표준말을 표준어로 고쳤다. 왜 굳이 한자로 바꿨을까? '표준어'를 규정짓는 표준어 국어대사전도 이름부터 이상하다. 사전을 굳이 말모이라 하지 않더라도 표준'말' 국어'큰'사전이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표준말'도 빼고 '우리말 큰사전' 또는 '겨레말 큰사전'을 제안해 본다.


세상에는 없는 세 가지가 있다. 비밀, 공짜, 정답이 그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영원한 것도 없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개념과 발명품들이 생겨나면서 신조어도 나타나고 표준어에 등재되기도 전에 사라지기도 한다. 표준어가 아니면 틀리거나 비속한 표현이라는 인식자체가 편협적이다. '무선 호출기'라 부르기보다는 '삐삐'가 얼마나 이쁘고 정겨웠던가?


https://youtu.be/vAV-dFN95B8?si=4mCu_cs3T-bY73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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