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판사'와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 [허준혁한방]
"왜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은 편안히 앉아 뜨고 있을까? 칼도 눈가리개도 없이..."
인기리에 방영된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온갖 살인 범죄들을 악마가 직접 처단한다는 독특한 소재와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극 중에서 '유스티티아(Justitia)'가 판사로 빙의된 악마로 나오지만, 사실은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다. 그럼에도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죄인들을 심판하도록 한 것은 진정한 정의의 여신이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정의의 여신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의 마아트(Maat)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아트는 정의뿐 아니라 진리와 질서를 상징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의 정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여신은 그리스의 디케(Dike)이다. 그 후 로마 신화를 통해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오늘날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가 탄생하였다. '정의(Justice)'란 단어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스의 법(Dike)과 정의(Dikation), 로마의 법(Jus)과 정의(Justice)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법과 정의는 같은 어원이다. 이러한 법과 정의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인격화시킨 정의의 여신상을 법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리스의 여신 디케는 칼만 쥐고 있었으나 로마의 유스티티아는 공평의 의미가 더해져 저울을 들고 있다. 서구에서는 왼손엔 저울을 오른손엔 칼을 들고 눈을 가린 채 서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곳곳에 세워두고 있다.
저울은 공정하고 공평한 법의 집행을 상징하며, 칼은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추상같은 법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며 눈가리개를 하거나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선입견이나 편견에 흔들리지 않고 저울질에 주관성을 철저하게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은 다르다.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편안히 앉아 칼대신 법전을 든 채 눈을 뜨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Ministry of Justice'라고 표기하여 '법무부'에 '법'이 없다. 법이 곧 정의요, 정의가 곧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법무부의 영문 이름 속엔 ‘법’이 '없기는 없다.'
국민들에게 법을 지켜라 요구만 할 게 아니라 권력과 돈에 눈치 보지 않게 눈부터 가리고, 저울을 바로 세울 일이며,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법조문만 찾을 것이 아니라 정의에 근거해 무뎌진 칼날을 갈고닦을 일이다. '지옥에서 온 판사' 유스티티아처럼 정의롭고 단호한 응징이 현실에서도 구현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