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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현판과 '세종대왕 나신 날' [허준혁한방]
  • 편집국
  • 등록 2024-10-21 09:48:31
  • 수정 2024-10-21 14: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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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현판과 '세종대왕 나신 날' [허준혁한방]



세계각국의 랜드마크 정책


나라마다 나라나 주요 도시를 상징하는 마루지가 있다. 마루지란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영어로는 랜드마크가 비슷한 의미이다. 랜드마크(Landmark)란, '땅'을 뜻하는 Land와 '표시하다'라는 뜻을 지닌 Mark의 합성어이다.


원래는 먼 곳에서도 잘 보이는 물체를 뜻했지만, 오늘날에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 파리 에펠탑, 북경 천안문 광장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국가유산이나 광장 같은 명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선진국들은 랜드마크를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뉴욕은 랜드마크로 지정된 건물이나 지역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에펠탑 주변에 7층 이상 건물을 세울 수 없도록 했으며, 이탈리아도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보다 낮게 짓도록 규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얼굴' 광화문 현판 논란


우리나라는 광화문 광장이 대표적 마루지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조선왕조를 이끌었던 경복궁이 있고 정부청사와 서울시민청, 청와대와 청계천이 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문제는 이렇듯 우리나라의 얼굴인 광화문 현판이 '별다른 의미 없이' 한자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글자'인 한자 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와 관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세종대왕 동상 뒤의 한자 현판 ‘門化光(문화광)’이 이상하니 한글 현판으로 바꾸는 일을 논의에 부쳐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구인 국가유산청은 반대하고 있다.


광화문 현판과 국가유산청


광화문은 1392년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때 경복궁과 함께 지어져 육조거리의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273년 동안 폐허로 있다가, 1865년부터 1872년까지 흥선대원군의 중건으로 복원되었다. 이때 공사를 책임졌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한자로 광화문 현판을 썼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조성과 관련하여 철거까지 계획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1927년 건춘문 쪽으로 이전하였다. 1945년 해방 후에는 6.25 한국 전쟁으로 석축만 남았다가, 1968년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하였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이 리대로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와 한글학회 이은상 선생의 건의를 받아들여 한글전용정책을 펴기로 하면서 상징적 의미로 광화문 한글현판을 달았다.


이후 2006년부터 목조 복원을 위해 해체하고, 월대와 해태 등을 제외한 복원공사가 완료되었다. 한글단체와 시민단체들의 한글 현판 요구에도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은 원형 고증과 보존을 명분으로 2010년 8월 15일에 흰색바탕에 검은색 글씨의 고종 때의 임태영 한자 현판으로 공개되었다.


그러나 석 달도 지나지 않아 현판에 금이 가 재제작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 고사진(1893년경)과 일본 와세다대 소장 '경복궁 영건일기'(1902년)를 참고해 현판을 분석한 결과 이전의 현판은 고증오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원형 복원이 원칙이라는 국가유산청의 논리대로라면 아까운 국민 혈세를 낭비하며 대통령과 정부, 국민들을 속인 가짜 현판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국가유산청은 국민에게 사죄하지도 않고 2023년 월대와 해태상 복원과 함께 새로운 고증을 토대로 검은색 바탕에 금빛 한자의 임태영 글자로 재제작해 내걸었다. 재현 현판을 바탕색과 글씨 색깔만 바꿔 다시 만든 것이다. 이렇듯 계속되는 국민 혈세 낭비도 없다.


동북공정과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중국이 한국의 무형유산 101건을 중국의 유산으로 지정하는 등 동북공정을 확대해가고 있음에도, ‘중국이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하면 그때 대응하겠다’며 방관하고 있다.


특히 중국 국가급 무형유산 20건은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할 것이 분명함에도 해금, 널뛰기, 그네뛰기, 전통혼 등 7건은 국내 국가유산 지정도 하지 않아 중국 유산으로만 지정되어 있기까지 하다.


중국은 8%의 소수민족이 63%의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다민족국가론을 앞세우며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을 무차별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노골적인 동북공정에는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여 비판받고 있는 국가유산청이 광화문 한글현판과 관련해서 만큼은 유독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속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수차례 적극적 논의표명에도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현판 원형복원 논란


광화문 현판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여러 차례 불에 타고 소실되며 재건되기를 반복해 왔다. 따라서 현재의 한자 현판이 창건 당시의 원형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지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복원한 재현일 뿐이다. 그럼에도 국가유산청은 원형 보존을 이유로 광화문 한글현판을 반대하고 있다. 


한자 현판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는 걸 따지기보다는 공사를 책임졌던 임태영이라는 인물과 그의 글씨가 어떠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는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훈민정음에 버금 할 가치를 지녔는지, 현재 시점에서 어떠한 상징이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모을 필요가 있다.


사실 복원되는 현판의 글씨가 임태영의 것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미 있는 분들도 많은데 왜 굳이 임태영 글씨여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정조의 어필이나 명필 한석봉, 김정희의 글씨, 또는 조선시대 한글 목판활자체나 훈민정음체 등 의견은 다양했다. 중요한 것은 복제 한자현판이 원형을 보존한다는 낡은 생각에서 벗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재현 한자 현판은 박물관에 보존하면 된다.


K-컬처시대와 한글마루지


한류팬 2억 명 시대, 지금 전 세계인들이 한국과 한국 문화를, 한국어와 한글을 향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광화문 한글 간판으로 전 세계인에게 응답할 차례이다.


광화문 한글현판은 한자를 한글로 교체하는 단순한 문자 변경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현대적 상징성을 동시에 밝혀주는 새로운 창조로서의 가치이다. 세계 각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글과 한국어의 '메카'로서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한국 문화의 글로벌 확산과 함께 광화문을 세계적인 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서울시는 광화문 일대를 한글 역사문화 중심지로 조성하기 위해 2011년부터 ‘한글 마루지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국가고유문자를 주제로 마루지를 조성한 도시는 서울이 세계최초이자 유일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한글마루지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영어간판들이 즐비한 것은 물론, 무엇보다 '광화문' 현판부터 한자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화문 한글현판과 '세종대왕 나신 날'


경복궁은 '훈민정음' 한글이 태어난 곳이며,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1995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을  폭파시키기 전까지 조선총독부를 가리고 막아서서 광화문 광장을 지켜왔으며, 광화문 광장은 세종대왕의 동상 모신 곳이다. 


제작한 지 석 달도 안 돼 '한자' 현판에 금이 간 것도, 잘못된 고증과 재제작도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듯 싶다. 광화문 앞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당신의 뜻을 우리 후손들에게 전달하신 것이 아니겠는가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광화문 한글현판 글씨체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창제당시의 서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국민공청회 등을 거쳐 공론을 모아야할 것이다.


'세종대왕 나신 날'을 한글현판으로 세종대왕의 숭고한 얼과 업적을 기리고 국민들의 자부심을 높이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얼굴’ 새로운 광화문을 통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에 모두가 힘을 합쳐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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