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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평(下馬評)의 유래와 물망, 그리고 입방아 [허준혁한방]


왕이 사는 궁궐과 종묘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종묘와 궁궐 앞에 비석을 설치했다. 비석이 세워진 안쪽으로는 말이나 가마가 들어갈 수 없었다.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 대·소인 모두 말에서 내려라)”


이를 하마비(下馬碑)라 했다. 이후 하마비는 성현이나 명사, 고관대작의 출생지나 분묘 앞에 세워졌다.


상류층 인사가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볼 일을 보러 가면 마부나 가마꾼들은 하마비 근처에 모여서 잡담을 나눴다. 특히 인사 때가 되면 누가 정승이 되고, 판서가 될 것이라는 등의 예상과 "~카더라"들이 많이 오고갔다. 하마평(下馬評)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된다.


그러나 하마평이란 말은 조선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않다.


비슷한 말로, 인재를 뽑을 때 유력한 인물로 지목되거나 어떤 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은 인물을 거론할 때 ‘물망(物望 :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명망)’에 오른다는 말도 있다.


'하마평'이 무성하던 대통령직속기구이자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20기 수석부의장이 내정되면서 국내외 부의장-운영위원-상임위원-협의회장-자문위원 윤곽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속에서 수고해오신 19기에는 수고의 박수를, 새롭게 봉사해야할 20기에는 축하와 "제발 좀 잘해달라"는 당부의 박수를 드린다.


'물망'에 올라서 그대로 된 경우도 있고, 입방아에 올라서 안된 경우도 많은 듯하다. 쓸데없는 입방아질도 문제지만 공연한 구설이나 행동으로 입방아 대상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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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8-28 08: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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