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일과 반포일, 그리고 'K-모꼬지' [허준혁한방]
세종대왕은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했다. 우리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을, 북한은 창제일을 기준으로 한다. 한글날이 10월 9일인데 비해, 조선글날은 1월 15일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반포일과 창제일 모두 정확한 날짜가 사료에 남아있지 않아 우리와 북한은 한글날과 조선글날을 각각 변경하기도 했다.
훈민정음은 <세종실록>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 자에서 “이달에 임금께서 몸소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내니 … 이를 훈민정음이라 부른다(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 是謂訓民正音)”는 기록과 함께 처음으로 세계문자사에 등장했다.
이를 날짜로 한정하면 음력 1443년 12월 1일부터 30일까지가 된다. 다시 음력 1443년 12월 1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양력 1443년 12월 30일이고 음력 1443년 12월 30일은 양력 1444년 1월 28일이 된다. 양력 1443년 12월 30일부터 1444년 1월 28일까지가 한글 창제 기간으로 이 중 한 날짜가 정확한 창제일이 되는 것이다.
북한은 이 기간 중 1월 9일을 조선글날로 정해 기념하다 1963년부터 15일로 바꿨는데 두 날짜 모두 정확한 선정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창제일이 아니라 반포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창제 이후 문제점들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3년 뒤인 1446년 9월(음력)에 완성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이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됐다(是月訓民正音成)”는 기록을 근거로 반포일로 기념하는 것이다.
한글날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말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 480돌인 1926년에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기념한 데서 시작한다. ‘가갸날’이란 명칭은 한글을 ‘가갸거겨...’라고 배우는 데서 비롯됐다.
음력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양력 10월 28일로 다시 정하게 되었다. 1928년부터 ‘한글날’로 이름을 변경하고, 1931년 10월 29일로 변경했지만 1446년 9월 훈민정음이 반포됐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1934년 9월 28일로 날짜가 또 변경되었다.
이후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인 해례본 말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 ... 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 (正統十一年九月上澣 ... 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9월 ‘상한’, 즉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제정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한글날인 10월 9일이다.
훈민정음 기념일과 관련하여 남북이 다른 것이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다. 창제한 날과 반포한 날 각기 커다란 의미가 있으며, 오히려 두 날을 모두 기억하고 기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상승효과가 있다.
'한글날'과 '조선글날'로 명칭이 다른 것 역시 현재 남북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나뉘어있는 것을 감안하면 크게 개탄한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기미독립선언문에서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대한과 조선은 상반되거나 대립적 개념은 아니며 적대적 개념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된다. 고조선과 삼한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소중한 가치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소중한 민족적 자산이자 개념이자 용어이다.
남한의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 절반 이상이 북한 사전에는 없는 말이라고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글 사용에 있어 남북 모두 세종대왕, 주시경으로 이어지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치하에서도 <말모이>를 만드려 했던 우리 민족이다.
독일은 1-2차 세계대전, 분단 속에서도 동서독 학자들이 협업해 123년 만인 1961년에 '독일어사전(Deutsches Wrterbuch)'을 완간하였다. 저물어가는 훈민정음 창제 581돌, 반포 578돌을 보내면서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사업의 재개를 간절히 염원해본다.
“아아 가갸날/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 /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셔요./... /온 누리듸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게 하여 주세요./가갸날, 오오 가갸날." 만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가갸날’의 탄생 소식에 시 '가갸날'로 기쁨을 노래했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그가 한글 예찬론자였다는 사실은 아는 이는 드물다.
만해 선생이 지난날 '가갸날'에 벅찬 감동으로 기뻐했듯이, 오늘날 K-컬처에 누구보다 기뻐하는 것은 이국땅 세계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세계한인들이다. 모꼬지... '놀이, 잔치와 같은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콘퍼런스와 컨벤션, 페스티벌을 다 아우를 수 있는 순우리말이다.
로제의 '아파트'가 K-술자리게임과 함께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세계한인 3세대, 4세대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더욱 쉽게 접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K-모꼬지'... 훈민정음 창제일과 반포일 모두 전 세계인들과 함께 'K-모꼬지'로 한글과 한국어의 세계화를 즐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