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3중고, 실태와 전망
최용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선택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 정세의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할 듯 치닫던 미국과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며, 남북·북미·북중 연쇄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9년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핵협상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한동안 혼란스러워 보이던 북한은 2019년 4월 12일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통해 최초로 정리된 입장을 내놓았다. 이 연설에서 김정은은 미국과의 장기전이 불가피함을 인식하고, 자립·자력을 통한 제재 극복을 주장하였다. 또한 더 이상 제재해제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여, 북미협상의 의제 전환을 시도하였다.
이는 하노이에서 북한이 제재 해제에 연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제재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북미협상의 시한을 연말로 설정하였고, 남한에 대해서는 촉진자·중재자가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로 나서라고 주문하였다. 이 시정연설에서 밝힌 김정은의 입장은 이후 북한 대외전략의 뼈대를 이룬다.
4월 12일 시정연설로부터 20여일 이후인 4월 25일 김정은은 블라디보스톡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6월 20-21일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을 평양으로 불러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북한이 연달아 북러,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시정연설에서 밝힌 미국과의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6월 북중정상회담에서 3가지 변할 수 없는 것(三个不會變)을 언급하였는데, △북중 당·정부의 우호관계, △양국 국민들 간 우호관계,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설정한 2019년말까지 북미관계는 진전을 보이지 못했으며, 남북관계 역시 국제사회 대북제재의 틀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북한은 2019년 12월 29-31일 개최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최종입장 정리하였다. 북한은 미국의 대화요구를 문제해결이 아니라 시간 끌기 혹은 상황관리를 위한 정책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의 장기전을 각오하고, 자력갱생을 통한 제재 정면돌파전을 선언하였다.
북한이 극복하고자 했던 첫번째 과제, 경제제재
제재 정면돌파를 선언한 이상, 북한의 첫번째 과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굳건히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16년 이후 대북제재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북한 경제에는 이미 충격이 누적되고 있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2017년 –3.5%, 2018년 –4.1%를 기록하였다. 2019년에는 다행이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났지만 0.4%의 성장을 기록하였다.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비록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던 북한 경제가 제재 본격화 이후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을 강요함으로써 내부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는 한편, 북중관계 개선을 통해 탈출구를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제재 돌파 전략도 구체화하였는데, 관광 사업을 통한 출구 모색이 대표적이다. 관광은 산업인프라가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북제재의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은 관광사업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정책적으로 장려하던 관광사업에 중국이 적극 호응하면서 2019년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24만-27만명으로 2018년대비 30-5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적으로 김정은은 삼지연 지구 건설, 원산-갈마 지구 건설, 양덕온천 지구 건설 등을 이른바 3대 핵심사업으로 선정하여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였는데, 이 3곳은 모두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인프라 투자였다.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제재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 그 국가의 대외의존도가 높을수록 제재의 효과가 클 것이다. 둘째, 집권세력이 여론에 민감할수록 제재에 따른 정책변화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고, 집권세력의 여론 민감성은 극단적으로 낮은 국가이다. 북한이 그간의 제재에 내구성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제재의 범위와 강도가 확대·심화·지속되면 그 효과는 누적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북한이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한동안 제재를 버텨내면서, 자신들의 핵능력을 강화시켜나가면 미국과 한국 등 주변국이 핵위협 증가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 경제의 내구력과 핵위협의 증가 사이 시간 싸움을 기획한 것이다.
북한이 예상 못한 두 가지 고난, 코로나19 & 수해
하지만 북한이 제재 정면돌파전을 선언한지 한달이 지나지 않아, 북한은 물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북한이 가장 긴 구간을 육상 접경하고 있는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의 보건의료체계가 얼마나 허약한지 잘 알고 있는 북한은 과거에도 주변국에서 감염성 질병이 발생하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결국 중국이 코로나19 총력대응을 발표한 다음날인 1월 22일 북한은 모든 외국 관광객에 국경 폐쇄를 통보했다. 1월 28일에는 국가비상방역체계 선포하고 중앙과 지방에 비상방역지휘부 설치하였다. 1월 31일부터는 북중 항공 및 국제열차 운행 전면 중단하였고, 2월 3일에는 북러 국제열차 운행을 중단하면서 모든 국경을 사실상 전면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코로나19 상황 초기에는 평양 순안공항과 북중 국경을 통해 입국하는 내외국인들을 15일간 격리 조치하였는데, 2월 12일부터는 30일간 격리하기 시작하였다. 남북관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1월 30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운영을 중단하고, 이 사무소에 근무하던 대남기관 인력들은 평양시에 진입하기 위해 30일간의 차단조치를 거쳐야 했다.
이러한 국경차단 조치는 북한 대외무역의 90%이상을 차지하는 북중무역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졌다. 중국 측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6월 북중무역 총액은 3억 2,301만 달러로 2019년 동기 대비 67.2% 감소하였으며, 대북 제재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7년 동기와 비교하면 83.7% 감소했다. 이에 따라 피치 솔루션스는 올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을 –8.5%로 전망하기도 하는 등 이미 대북제재로 허덕이고 있는 북한 경제에 코로나19가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로나19는 북한이 제재 정면돌파전의 주력으로 삼았던 관광사업에 심각한 타격이 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3대 핵심 건설사업이 모두 관광 인프라 건설이었는데, 이 건설비용을 언제 회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건설사업 방식이다. 국가가 사전에 자재와 예산을 마련하여 건설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하부단위에 건설사업을 나누어 분배하면 각 단위가 민간의 자본을 끌어모아 이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관광사업 자체가 정체되어버리면 기존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대규모 국가 건설에 투자한 많은 사람들의 불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상황이 쉽지 않은데, 미래 전망은 더 어두운 것이다.
결국 북한은 올해 당 정치국 회의를 연거푸 개최하면서 기존의 산업전략을 수정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2020년 4월 11일 개최한 정치국회의에서는 주요 건설 대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야심차게 추진해왔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사업을 제외하였다. 이어서 6월 7일 정치국회의에서는 인민경제선행부문(전력·금속·화학·석탄)발전노선을 화학공업우선발전노선으로 조정하였다. 원료와 자재가 부족한 여건에서 화학공업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는 선택과 집중이지만 부정적으로는 계획의 축소였다.
여기에 더하여 2020년 장마가 길어지면서 북한 지역에도 수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이번 수해는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직접 차량을 운전하여 수해 지역 현장을 방문하는 등 민생문제를 챙기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를 고려할 때, 아직 태풍철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수해는 2020년 9월 현재 진행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올 초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북중 국경을 차단함으로써 적기에 필요한 양의 비료가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름철 수해까지 겹치면 식량 생산에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북한은 8월 19일 당중앙위원회 7기 6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내년 1월 8차 당대회 개최를 결정하였다. 이 회의에서 북한은 예상치 못했던 도전으로 인해 계획했던 국가 경제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고, 인민생활에도 뚜렷한 향상이 없었다며 경제 정책 실패를 인정하였다. 2020년 10월 10일 당창건 75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를 과시하려했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2018년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자신이 주도하였다고 선전해 온 김정은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은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라는 새로운 정치일정을 제시함으로써, 김정은의 리더십 상처를 최소화하고 인민들을 새로운 동원체제로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향후 전망
북한 내부적으로 2020년 하반기에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당창건 75주년 행사가 될 것이다. 특히 경제발전 5개전 전략 등 기존 계획들의 성과를 과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 행사를 통해 북한이 신형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공개할 가능성도 있다.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 등과 달리 전략무기의 공개 자체가 대북제재 위반은 아니므로, 선거를 앞둔 미국을 압박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자존감을 과시하는 수단일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외관계에 있어 핵심 국가는 역시 중국이 될 것이다. 실제로 2019년 북중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대북 지원을 확대하였으며, 최근 평양종합병원 건설에도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무작정 대북지원을 확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가진 딜레마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책임과 북중관계의 관리에서 발생한다. 즉,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제재를 위반할 수는 없지만, 북한을 자기편으로 묶어두기 위해서는 대북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대북지원은 전폭적·전면적이기보다는 조용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중국의 대북지원이 충분하게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현재의 전략노선을 크게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국의 대북지원이 불충분하게 이루어진다면 남북 및 북미관계 변화 필요성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2020년 하반기 북미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낮아지는 국면에서 북한이 트럼프의 초조감을 활용하려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임기말 행정부와의 합의를 통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북한은 미 대선 상황을 주시하면서 그 이후를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북한이 대남관계에 정책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다만 6월의 적극적인 공세가 주춤하고, 한국의 대북·안보라인 개편 이후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고, 국방중기계획 등이 발표되었으므로, 북한도 조만간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결국 북한 경제의 내구력과 북중관계가 될 것이다.
2020년 상반기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 경제의 내구력은 빠르게 소진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따라 북한의 대외전략에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다시 협상에 임하더라도, 그 이후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북핵협상의 본질적 측면은 아직 변화한 것이 없다. 최근의 협상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한미관계나 미중관계 차원에서 조율이나 협력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등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