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실마리, 어디서 찾아야 하나
박종철(통일연구원)
북한의 ‘새로운 길’과 전략적 고민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결렬로 제재해제와 경제도약을 꿈 꾸었던 북한의 고민이 깊어졌다. 북한은 궁여지책으로 자력갱생으로 버티겠다는 ‘새로운 길’을 전략으로 내세웠다. 제재해제에 연연하는 대신 내부 자원을 동원하여 생존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목표는 ‘생존과 버티기’이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직면하여 국가생존이 최대의 목표이며, 제재로 인한 곤경을 자력강화로 버티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북미대화에도 불구하고 기대와 달리 대외 환경이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평가한다. 미국을 신뢰할 수 없고 오히려 제재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재국면에서 남북협력도 실질적으로 어렵고 한국의 조정 역할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코로나 19는 북한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에 대응하여 인적 왕래와 교역을 차단하는 셀프 봉인체제를 만들었다. 북한 당국이 방역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을 보면 북한도 코로나에서 예외라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는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교역단절로 식량, 필수품, 자재 등의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당 정치국회의에서 평양시의 생활보장 대책을 논의한 것을 보면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 얼마전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의 건설부진을 질타하고 간부진을 전원 교체한 것을 보면 자재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실정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7월 말 장마는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와 강원도에 피해를 입힌 것으로 보인다.
제재, 코로나 19, 수해라는 3중고에 직면해서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제재에 대해 그럭 저럭 버텼으나, 코로나 19와 수재가 결정타를 미친 것이다. 도시는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을 겪고, 중간재 및 자본재의 수입 중단으로 생산활동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2021 1월 8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것임을 밝힌 것을 보면 상황이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8차 당대회에서 미대선 이후 동향을 분석하고 자력갱생을 구체화한 ‘새로운 길 2.0’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고민은 새로운 길의 곳곳에 장애물과 복병이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첫째, 핵억제력 강화는 레드 라인을 넘어설 경우 미국의 군사행동과 유엔의 제재 강화를 불러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치밀한 계산 하에 임계점을 넘지 않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 둘째, 자력갱생을 위해 시장통제를 강화하고 국가·시장의 공생관계를 조정하면 국가와 시장세력간에 이익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장미빛 미래를 철회한 대신 허리띠를 졸라 맬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인민들의 불만이 쌓일 것이다. 셋째, 당과 내각의 지도력 강화는 지방·기관·기업소의 분권적 성향과 부딛칠 수 있으며 생산, 분배, 유통과정에서 중앙집권화와 분권화 경향이 충돌할 수 있다.
2. 북한의 대남·대미정책
북한은 6월 초 남측에 대해 공세조치를 취함으로써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북한은 대북전단살포 비난을 시작으로 남북간 모든 통신선 차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군사조치 예고 등으로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군사훈련계획을 보류하는 결정을 하면서 한 고비를 넘겼다.
북한의 롤로 코스터와 같은 대남정책은 복합적 의도를 품고 있다. 첫째,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주민동요를 막고 내부결속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대남비난을 하고 남측에 책임전가를 함으로써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것이다. 둘째, 남측에 대해 쌓인 불만도 있다. 대북전단 살포가 기폭제가 되었지만 남북합의사항의 불이행, 대미의존 등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의 대적관계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남북합의사항의 이행과 미국으로부터의 자율성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요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월에 들어 북한은 방향을 틀어 미국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대미전선의 정면에 나선 김여정 제1부부장은 7월 초 담화를 발표했다. 올해 3차 북미정상회담이 불가하다고 하면서 미국에 대한 불만을 열거했다.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프레임을 내세우면서 대북제재 연장, 북한의 인권문제 언급, 불량국가 지칭,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흥미로운 것은 대미위협의사가 없으며, 비핵화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점이다. 그리고 정상간 개인적 친분유지를 강조하고 트럼프의 재선에 대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더욱이 미 독립기념일 행사의 DVD를 개인적으로 받고 싶다는 이례적인 부탁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제재와 코로나의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북한은 내부 결속과 버티기에 의해 체제 단속을 하고 있다. 남측에 대해서는 실망을 토로하면서 국면전환의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가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의 대선 상황을 주시하면서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미 대선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한편, 북한이 10월 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저강도 또는 중강도 위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패를 군사력 시위로 만회하려 할 수 있다. 또한 미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미 대선 이후를 겨냥하여 협상수단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이 당 창건 기념일을 전후하여 ICBM의 공개 또는 발사, .SLBM 발사 등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3. 남북관계의 국면전환을 찾아서
미국은 대선에 집중하고 북한은 대내문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책적 선택이 중요하다. 올 하반기 한반도상황을 관리하면서 국면전환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국내적으로 남북합의사항의 이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전단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남북합의문을 국회에서 동의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 토대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제재상황에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남북보건·의료협력의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은 코로나 19에 대해 강력한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확진자가 없다고 공표하지만, 북한의 열약한 의료체계 및 주민 영양상태를 고려할 때, 지속적 동향 파악 및 보건협력이 필요하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제위원회는 국제적십자연맹, 국경없는 의사회 등의 대북의료지원에 대한 면제를 승인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남북보건협력이 중대하고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남북한이 보건협력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남북한 주민의 생명권 및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보건협력은 최우선과제이다. 남북보건협력을 위해 정부, 민간, 국제사회가 다층적 협력망을 구축하고 보건협력의 구체적 아이템을 선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민간단체 및 지방자치단체의 대북의료지원을 위한 절차를 간소화하고, 우선 열감지 카메라, 진단키트, 치료제, 의료진 보호장비 등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 남북대화를 추진하여 보건협력의 절차, 방법, 아이템 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셋째, 남북보건·의료협력을 출발점으로 병충해 방지, 기후변화, 홍수 등 재난·재해관리를 위해 남북한이 한반도생명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문재인대통령은 국내외 연설, 기념사 등에서 ‘한반도생명공동체’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남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 및 일상의 평화를 위해 재난·재해에 대한 공동대책이 필요하다. 인간안보에 역점을 둔 협력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공존프레임을 만드는 촉매가 될 것이다. 남북당국간 대화와 전문가·민간인 협의체를 병행 운영하여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남북협력에 대해 유엔에서 제재를 면제받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 19 상황에서 국제적 분쟁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이란에 대한 제재 완화가 언급되기도 한다. 중국, 러시아 등 8개국은 대북의료지원에 대해 제재 면제를 요청하였으며, 미국도 대북의료지원 의사를 표명한 점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유엔제재위원회에서 보건의료협력, 산림협력, 환경협력 등에 대해 일괄면제를 받아야 한다.
다섯째, 남북협력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미워킹그룹이 제재를 기준으로 남북협력사업의 이행 여부를 판단해왔다. 그러나 남북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분야 및 인도주의 분야는 한미워킹그룹의 어젠다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한반도평화공공외교의 방향
미대선과 코로나 19의 와중에서 한반도평화시계가 멈춰있다. 일상이 힘든 요즘 평화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 점도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멀리 내다보고 한반도평화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가동시키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평화에 대한 지지망을 구축해야 한다.
한반도평화에 대한 국제적 협력망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간 외교적 통로를 활용하는 것과 함께 국제사회의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공공외교를 확대해야 한다. 오늘날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국제문제에 대해 여론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사안별로 글로벌 연대도 작동하고 있다. 외교는 더 이상 외교관만의 업무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되었다. 따라서 주요국 및 국제사회의 정계, 언론계, 학계, 민간단체 등을 대상으로 복합적인 그물망을 형성하는 공공외교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평화공공외교는 국제사회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반도평화의 의미와 효과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지지하는 정책을 실시하도록 하는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평화공공외교의 목표는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 평화를 확산하고 이를 통해 공존과 공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평화공공외교는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단계별, 분야별로 우호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하고 주변국 및 국제사회로부터 지지와 협력을 얻기 위해 여러 정책수단을 효과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평화공공외교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별로 맞춤형 공공외교를 실시해야 한다. 한반도이슈에 대해 각 국의 국가이익, 우선순위, 전략적 고려사항 등이 다르다. 또한 국가별로 우리나라와 협력의 성격과 네트워크가 다르다. 국가별로 시민사회와 여론의 영향력도 다르다. 이러한 국가별 상황에 맞게 맞춤형 공공외교를 작동시켜야 한다.
둘째, 전문가, 언론인, 문화계 인사 등으로 공공외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해외의 차세대 지도자,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동포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나라에 흩어진 해외동포들의 국제적 연대망을 형성하여 이들이 평화공공외교에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해외동포가 평화공공외교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디아스포라 공공외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동포사회가 코로나 관련 의료용품 보내기 운동, 개성공단 기업협회 초청 미연방의회 설명회 개최, 미연방하원 북한포럼 개최 등을 실시한 것은 이런 사례이다. 그리고 미국과 뉴질랜드 국회에서 한반도평화체제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교포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도 이런 예이다.
넷째, 소프트 파워와 한국의 평화모델을 활용해야 한다. 하드파워와 함께 한류 등 문화분야의 소프트파워를 결합해야 한다. 한국이 주변국 및 국제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평화이미지, 문화국가 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부각된 K-방역모델을 토대로 K-인간안보, K- 평화모델을 평화공공외교의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한편 평화공공외교를 실행하기 위해 시스템, 소통수단, 거버넌스, 인력을 준비해야 한다. 우선 평화공공외교를 수행하고 있는 정부, 공공기관, 연구기관, 민간단체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러 기관이 독자적이고 산발적으로 공공외교를 실시하고 있는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각 기관들이 정보 및 자료의 공유, 역할 분담, 특화 분야의 선정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협업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공공외교의 담론을 개발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확산해야 한다. 평화공공외교의 의미, 개념, 추진구도 등에 대한 기본적 내용과 함께, 지역별, 권역별로 중점을 두어야 할 컨텐츠에 대한 모듈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담론을 주요 언어로 번역하여 주변국, 유엔, 국제기구 등에 배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소통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소책자, 팜프렛 등을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동영상, 유투브, 화상회의 등을 통해 담론을 확산해야 한다. 아울러 국제사회의 여론 지도층과 신세대에게 이 메일 보내기, 평화행사 개최 등을 통해 접촉 수단을 다양화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공공외교를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한반도 관련 인사에 관한 자료를 수립하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센트럴타워가 필요하다. 신진인사, 청년세대, 문화계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발굴하고 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한편 한반도평화공공외교를 추진할 수 있는 국내외 전문인력을 육성·지원해야 한다. 한반도문제 관련 외국 인사들을 대상으로 국내외에서 세미나, 워크샵, 학술회의 등을 개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유형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에서 평화공공외교에 대해 관심을 지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