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의 성장과정이 가르쳐주는 교훈 [허준혁한방]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훈민정음 최초의 책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제1장 첫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해동은 '발해의 동쪽나라' 즉 삼국시대, 고려부터 자주 쓰이던 우리나라의 별칭이며, 육룡은 세종대왕 직계선조인 여섯임금(태종-태조-환조-도조-익조-목조를 말한다. 나르샤는 "날아오르셔서" 라는 뜻이다.
이어 그 유명한 2장이 이어진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릴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아니 그칠새 내가 되어 바다로 가느니”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한 뒤, 훈민정음을 시험하기 위해 펴낸 훈민정음 최초의 책(1445년)이자 반포(1446년)이전의 유일한 한글 작품이다.
왕의 권위와 위엄 상징
<용비어천가 >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용은 왕과 왕실을 상징한다. 왕의 얼굴은 용안, 옷은 용포, 평상은 용상이라고 부르는 등 용은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할 때 사용되었다. 중국의 황제는 용포, 조선의 임금은 곤룡포를 입었다. 궁궐에도 곳곳에 용이 지키고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 천장에는 7개 발톱을 가진 쌍룡이 있다.
문무왕은 사후에 호국룡이 되겠다고 하여 동해 큰 바위에 묻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작제건과 용녀의 소생인 용건의 아들이었다.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이나 후백제의 견훤도 용의 후손으로 일컫는다.
용의 순우리말 '미르'
꿈 중에서는 용꿈이 가장 좋은 꿈으로 일컬어져왔다. 태몽에 용이 나타나면 큰 인물이 태어난다고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다. 용은 희망과 성취의 상징으로도 여겨져 왔다. 입신출세의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 하고, 출세하면 "개천에서 용났다"라고 한다.
용은 고대 이집트·바빌로니아·인도·중국 등 문명의 발상지에서 신화나 전설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문명의 발상지에는 대부분 큰 강이 있었다. 용이 큰 못이나 강, 바다 등 물속에 살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하는 ‘물의 신’으로 여겨져 왔던 것과 일치한다. 용을 뜻하는 순우리말 ‘미르’도 물과 관련이 있다. 춘분에는 하늘로 승천하고 추분에는 못으로 내려온다.
십이지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용(龍)은 기린(麒麟)·봉황(凰)·거북[龜]과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불려왔으며, 십이지 중 유일하게 날아오를 수 있는 동물이자 상상의 영물이다. 또한 '용호상박', '좌청룡 우백호' 등 범과 비교되는 표현들이 많다.
사슴의 뿔, 낙타의 머리, 소의 귀, 토끼의 눈, 돼지의 코, 뱀의 목덜미와 몸통, 조개의 배, 매의 발톱, 호랑이의 발바닥, 잉어의 비늘을 가졌다. 특히 잉어의 비늘은 81개인데 목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역린(逆鱗)이 있어 이를 건드리면 격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용들의 종류와 역할
용들은 저마다 역할이 다르다.
황룡(黃龍) : 중앙을 수호하며 모든 용들의 수장으로 황제의 상징이다. 음양의 조화와 만물의 성장, 자연의 토양, 인간의 생(生)을 담당한다.
청룡(靑龍) : 동쪽을 수호하며 비와 구름, 바람과 천둥 등 날씨와 기후, 바다와 물, 모든 생명의 탄생을 담당한다. 어민들은 바다를 다스리는 신을 용왕이라고 칭하고 용왕제와 풍어제를 지낸다.
백룡(白龍]) : 용 중에서 가장 빨리 날며 서쪽을 방위한다. 서쪽 방위와 쇠를 다루는 백호와 자리가 겹친다.
적룡(赤龍) : 남쪽 방위를 지키며 불을 상징한다. 주작(朱雀)과 자리가 겹친다.
흑룡(黑龍) : 북쪽 방위를 지키며 물을 상징한다. 현무(玄武)와 겹친다. 기우제의 대상이기도 하다.
용의 성장과정
주역은 용을 통해 성장과정별 처신과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잠룡물용(潛龍勿用) : 물속에 잠겨 때를 기다리며 내공을 닦는 '잠수할 잠' 잠룡(潛龍)의 시기. 잠겨있는 용은 아직 쓰일 때가 안되었기 때문에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고 한다.
현룡재전(見龍在田) : 모든 준비를 끝내고 수면위로 떠오른 '나타날 현' 현룡(見龍)의 시기. 누구에게나 보이는 밭으로 나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현룡재전(見龍在田)'이라고 한다.
비룡재천(飛龍在天) : 하늘 높이 올라 날아다니는 '날 비' 비룡(飛龍)의 시기. 힘차게 하늘을 솟구쳐오르는 용의 형상으로 세상에 능력을 펼치며 사람들이 갈채를 보낸다. 하늘을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의 조화이기 때문에 비룡재천(飛龍在天)이라고 한다.
항룡유회(亢龍有悔) : 더 이상 올라갈 때가 없는 '높이 오를 항' 항룡(亢龍)의 시기. 가득차면 오래 가지 못한다.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기 때문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고 한다.
여의주물고 힘차게 승천하는 청룡의 새해
2024년 갑진년 청룡의 새해가 밝았다. 용은 여의주가 있어야만 승천할 수 있다. 여의주(如意珠)는 '뜻을(意)을 원하는 대로(如) 이루어 주는 구슬(珠)'이라는 뜻이다.
용의 목표와 희망은 구름을 박차고 승천하는 것이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은 우리 민족속에 내재되어 있는 포부이자 내일을 향한 도전과 희망의 표상이기도 하다. 여의주를 물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청룡아 나르샤! 높이곰 나르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