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영웅들의 명마와 '슈퍼선거의 해' [허준혁한방]
역사속의 영웅들은 명마를 타고 전장을 누볐다. 나폴레옹이 백마를 타고 알프스를 넘는 유명한 모습은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이다. 백마의 이름은 '마렝고(Marengo)'로, 나폴레옹의 전투 중 가장 위대한 승리로 꼽히는 마렝고 전투에서 따왔다. 폴 들라로슈의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고 있는 모습이 사실 그대로 그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렉산더의 명마 '부케팔로스(Brcephalos)'는 이마의 점이 황소의 뿔같다 하여 황소의 머리라는 뜻으로 이름지어졌다. 히다스페스강 전투에서 부케팔로스가 죽자 알렉산더는 부케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추모할 정도로 사랑했다.
인류최강의 기마부대로 평가받는 칭기즈칸의 몽골군의 말들도 빼놓을 순 없다. 하루에 천리를 달렸다는 관우의 '적토마(赤兎馬)'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명마로, 관우가 죽은 이후 밥을 먹지않고 굶어 죽었다고 전해진다. 항우의 흰털이 섞인 검은 말 '오추마(烏騅馬)'는 원래 용이었던 명마로, 항우가 죽자 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한다.
고구려계 유민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의 갈기와 꼬리가 파르스름한 흰말 '청총마(靑驄馬)'는 파미르고원을 함께 넘으며 주인과 일생을 함께했다. 당태종 이세민을 위기에서 구해준 삽로자, 권모과, 백제오, 특근표, 청추, 십벌적 등 여섯마리의 '육준마'도 유명히다.
우리민족에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유린청, 횡운골, 추풍오, 발전자, 용등자, 응상백, 사자황, 현표 등 '팔준마' 이야기가 있다. 화랑시절 천관녀의 집앞으로 데려간 말의 목을 베고 통일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장군, 첫 무과응시에서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져 버드나무껍질을 벗겨 다리에 싸매고 시험을 치뤘다는 성웅 이순신장군의 기록에도 말이 등장한다.
말은 청동기 시대부터 가축화되었으며, 자동차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고대 전차-기병의 역사와 함께 대표적인 군대 동물로 제2차 세계대전까지 기병대가 존속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초기까지 기병이 있었다가 기갑부대에 편입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말과 관련된 용어들이 많다. 선거에 도전하는 것을 출마한다고 표현한다. 과거에는 말을 타고 나간다는 것은 전쟁에 나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반대로 ‘낙마’도 있다. 말은 출세나 성공을 의미했기에 관직에 오르지 못하거나 타의에 의해 선거전에서 빠지게 될 때 ‘낙마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후보나 정부 내각 개편이 있을 때 ‘하마평에 오르내린다’는 표현을 한다. 궁궐이나 종묘 앞 비석 하마비 부근에서 상전들이 말에서 내려 들어가고나면 정보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소문이 확산되는 데서 유래했다.
선거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항마’는 ‘우승이 예상되는 다투는 말’로 선두주자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하며, 복병을 뜻하는 ‘다크호스’도 선거나 스포츠 등에서 많이 사용된다.
2024년은 세계 76개 나라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이다. 80억 명의 세계인구 중 절반이 넘는 42억 명이 투표를 하는 것이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매치'가 예상되는 미국 대선과 푸틴의 5선 연임 도전 러시아 대선, 유럽의회 선거가 있다. 유럽인구보다 많은 인도의 총선, 러시아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 대선을 비롯 대만, 인도네시아, 이란, 멕시코 등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국제정세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 장기전에 접어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 등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르는 주요국들의 선거 결과는 새로운 영웅들의 등장과 함께 국제정치와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4.10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자객공천'으로 불리는 대항마 등 각종 하마평과 함께 대진표가 본격화되고 있다. 동시에 각정당과 예비후보들의 정치공방과 공약 등 '말의 성찬'도 한창이다.
"차라리 승마선수를 국회로 보내자"는 언어유희적 우스개소리가 있다. 승마선수는 기본적으로 말(馬)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낙마하거나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말(言)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제22대 국회를 구성함으로써, 초일류 정치를 선도하는 K-정치의 서막을 알리는 또다른 의미의 '슈퍼선거의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