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쇠코뚜레와 부리망, 워낭소리 [허준혁한방]
  • 편집국 편집국
  • 등록 2024-03-21 17:11:01

기사수정


쇠코뚜레와 부리망, 워낭소리 [허준혁한방]


모두가 어려웠던 지난 시절, 농가에서는 송아지가 들어오는 날은 새로운 식구가 늘어나는 것처럼 기쁜 일이었다. 지금처럼 농기계가 보편화되기 전이라 집에 소가 있다는 것은 '반농사'를 짓는거나 다름없었던 터라 소를 장만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웃집의 새끼소를 가져다 잘 키워 어미소가 되고, 그 어미소가 다시 새끼를 낳으면 어미소를 원 주인에게 주는 '소배내기' 풍습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재산목록 1호 '소'


소는 재산목록 1호였다. 서양에서도 영어로 소를 뜻하는 ‘Cattle’은 자본을 뜻하는 Capital과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다. 소의 자연 상태 수명은 20~30년이고, 2~3살 때부터 일소로 쓴다.


혹여 소가 병이라도 들게 되면 한 철 농사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한 식구인 소에 대한 농부의 걱정과 애정은 남다르다.


비록 농부는 사람이고 소는 축생이지만 일을 할때면 둘은 혼연일체가 된다. 쟁기질을 하다가 돌이라도 나오면, 소는 알아서 돌아가고 농부는 미리 쟁기를 들어 소의 헛고생을 덜어준다. 소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히면서 힘들어할 것 같으면 소의 마음이 되어 충분히 쉬어준다.


코뚜레와 부리망


소는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목걸이 정도로는 제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코뚜레이다. 송아지가 어느 정도 자라면 노가주나무나 향나무 가지를 잘라 코뚜레를 만든다. 코에 구멍을 내고 코뚜레를 집어넣어 어릴 때 부터 길을 들인다. 너무 자라기 전에 해주어야 소도 사람도 덜 힘들다.


그런가 하면 새순이 올라오고 소들이 먹을 것을 찾느라 한 눈을 팔지 못하도록 그물처럼 생긴 '부리망'을 입에 덧씌운다.


코에는 '코뚜레' 입에는 '부리망'...

평생을 주인과 함께 농사일에 바치는 소들은 굳이 코뚜레를 당기지 않아도 부리망을 씌우지 않아도 주인 말을 다 알아들을 것 같아 코뚜레와 부리망을 생각할 때마다 애틋하다.


소들이 그렇게 사람 말을 잘듣는 것은 성품이 온순하기도 하지만 생살을 뚫고 있는 쇠코뚜레가 주는 고통때문이 아닌가하는...


꼬뚜레와 송아지의 울음소리


어린시절 방학때면 시골의 할아버지댁에서 지내곤 했다. 어느 날인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가시고 집에 혼자 있는데 송아지가 마당을 이리저리 뛰놀더니 갑자기 방문앞으로 와 빤히 쳐다보는데 얼마나 놀랬던지...


할아버지, 할머니 계실 땐 만지기도 하고 같이 뛰놀며 놀기도 했는데 혼자있는데 오니까 겁이 났던 모양이다. 방문을 걸어잠글 엄두도 못내고 구석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그저 송아지가 멀리 가주기만 바랬다.


같이 잘 뛰어 놀던 송아지가 어느날 코뚜레를 하고 불편해 하면서 눈을 껌뻑이며 일주일 정도 울음소리를 낼 때 어린 마음에 얼마나 안쓰럽던지...


방학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 할머니께 감사인사 편지를 쓸 때면 정이 들었던 송아지도 잘있는지 꼭 안부를 여쭙기도 했다.


부모님의 꼬뚜레와 부리망


자식들이 커서 상급학교에 갈 때가 되든가 하면 가장 늙은 소의 코뚜레를 잘라 코에서 빼낸다. 신기한 것은 코뚜레를 푼 소는 송아지 시절 처음 코뚜레를 뚫었을 때처럼 울음소리를 낸다. 그러고는 며칠후 집앞에 도착한 낯선 트럭에 실려 사라진다.


평생을 옭아매었던 코뚜레가 벗어지는 순간 곧 닥쳐올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이처럼 코투레는 소에게 있어 구속이자 자유이며 삶이자 죽음이기도 했다.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하고 싶은 일 제대로 못하고 할 말 제대로 못하고 맛있는 것 제대로 못드신 부모님들께는

어쩌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꼬뚜레이자 부리망이 아닐까.


워낭소리에 담긴 또다른 메세지?


평생을 코뚜레와 부리망을 차며 인간을 위해 노동력과 우유를 제공하는 소는, 죽어서는 머리부터 꼬리, 뼈, 내장까지 단백질을 공급하고 뿔과 가죽도 공예품이나 악기, 옷과 신발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된다. 이렇듯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가는 동물이 소다.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는 속담도 이같은 소의 헌신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하품이 문제라고 한다. 하품(트림)과 방귀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 넘게 강한 온실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반추동물인 소 한 마리의 1년 배출 메탄가스는 평균 70~120㎏으로 전세계 15억 마리를 합치면 1억500만~1억8천만톤에 달한다. 지구 전체 온실효과의 15~20%로,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13%의 온실가스량보다도 많은 비중이다.


소들의 워낭소리는 우리 인간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줘왔던 또다른 메세지는 아니었을까? 사람살리는 산'소'든 사람죽이는 탄'소'든 이래저래 고맙고도 미안하고 고민스러운 '소'에 대한 많은 연구와 배려가 필요한 요즘이다.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

- 영화 <워낭소리>(2008)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유니세프 배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