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과 '민족의 스승' 세종대왕 [허준혁한방]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이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려 정한 날인 줄 모르는 분들이 많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이야말로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시자, 모든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기를 바라는 취지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태조 6년(1397년) 음력 4월 10일(양력 5월 15일) 한양 ‘준수방 잠저’에서 태어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올해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 627돌이기도 하다.
스승의 어원에는 무당을 뜻하는 '무격설'과 불교의 중을 뜻하는 '사승설'이 있다. '무격'이란 여자 무당 '무(스승 무)'와 남자 무당 '격(화랑이 격)'을 합친 말로 '스승' 무는 고대 모계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15세기 문헌에는 중을 '스승'이라고 기록했으며 높여 부를 때 '사승', '사님'이라 했다. '사'의 중국 발음이 '스'였던 점에서 '사승'이 '스승'으로 '사님'은 '스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은 1958년부터 충남 강경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세계적 십자의 날(5월 8일)을 맞아 투병 중이거나 퇴직한 은사님을 위문하는데서 시작됐다. 이후 1963년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가 5월 24일을 '은사의 날'로 정하였다가, 1964년에 '스승의 날'로 변경하고 날짜는 5월 26일로 정했다.
그러다 이듬해인 1965년에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정하고, 청소년적십자 단원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같은 해에 대한적십자가 제정한 노래 '스승의 은혜'가 처음으로 발표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인연을 이야기할 때 겁(kalpa)이란 단어가 인용될 때가 있다. 천지가 한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될 때까지, 1천 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 만한 바위를 뚫어 없애거나, 100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사방 40리의 바위를 닳아 없애는 시간을 말한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것도 5백 겁의 인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나라에 태어나는 인연은 1천 겁, 하루동안 길을 동행하는 인연은 2천 겁 , 하룻밤을 한 집에서 자는 인연은 3천 겁, 한 민족으로 태어나는 인연은 4천 겁, 한 동네에 태어나는 인연은 5천 겁 , 하룻밤을 같이 자는 인연은 6천 겁, 부부가 되는 인연은 7천 겁 ,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8천 겁, 형제자매가 되는 인연은 9천 겁, 스승과 제자가 되는 인연은 1만 겁...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의 인연보다 스승과 제자가 되는 인연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스승은 지식을 넘어 삶의 지혜까지 가르치는 진정한 선생님을 의미한다. 스승과 제자 간의 사이가 극도로 일그러지고 있는 현대에서 선조들의 이러한 정의는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하겠다.
스승의 날이 '민족의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이라는 사실에 또 하나 반드시 짚을 게 있다. 서울시는 세종께서 한양 ‘준수방 잠저’에서 태어났다"는 세종실록 기록에 따라 지난 1986년 현재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통인시장으로 가는 대로변에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이후 2007년 종로구 통인동 137번지 일대 1500평 규모인 것으로 확인했고, 2011년 용역결과에서도 3곳을 세종대왕 생가터로 추정하며 생가복원 사업을 구체화했으나 최종결정지에 대한 고증과 예산 등을 이유로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준수방 잠저'는 태종이 살고 세종· 문종·세조가 태어난 곳으로 4명의 임금을 배출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며, 세종께서 즉위 후에도 찾던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기도 했다.
소설 속 홍길동, 만화 속 고길동도 생가가 복원된 마당에 초라한 표지석 하나 달랑 만들어놓고 이름만 세종마을로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도 낯 뜨거운 일이다. 많은 한글단체와 시민들이 민족의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생가복원을 간절하게 외쳐오고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의 의미와 함께 세종대왕의 얼과 업적, 그리고 생가복원과 한글의 세계화에 대해 되새겨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