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의 날, 사랑이 만든 위대한 발명품들 [허준혁한방]
윌리엄과 수술용 장갑
30대 초반의 나이에 미국 최초로 담낭 절제술을 성공시킨 윌리엄 스튜어트 할스테드는 1890년대, 미국 최고의 의료 기관 존스 홉킨스 병원 창립 교수로 초빙되었다. 피가 묻은 손을 환자를 살린 영광의 손이라 여기며 씻지도 않고 수술할 정도로 세균감염의 위험성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 상황에서도 월리엄은 완벽한 무균 환경을 강조했다. 비누로 손을 닦은 후 산성 용액으로 손을 씻어내고 뜨거운 옥살산에 손을 담근 다음 독한 염화수은 용액으로 세척하는 4단계의 손 씻기로 원성(?)이 자자 했다. 온갖 약품으로 손을 씻어야 했던 의사들의 손이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냉혹할 정도로 까칠했던 윌리엄이지만 신입 간호사 캐롤라인 햄프턴을 짝사랑해 남몰래 챙겨주었다. 하지만 유독 피부가 약했던 캐롤라인 역시 강한 약품으로 손을 씻어내어야만 했던 윌리엄의 규정에 괴로워했고 결국은 이직을 결정하게 된다. 고민하던 윌리엄은 캐롤라인의 양손을 본떠 석고상을 만든 뒤, 타이어와 남성용 피임 도구를 만들던 고무회사 뉴욕의 굿이어에 보내 캐롤라인 맞춤형 고무장갑을 만들었다. 전 세계에 없어서는 안 될 수술용 실리콘 장갑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윌리엄과 캐롤라인은 1890년 결혼하여 여생을 함께 보냈다. 인류를 세균 감염의 위협에서 구한 수술용 실리콘 장갑은 이렇듯 사랑이 만들어낸 가장 로맨틱한 발명품이다
얼 딕슨과 일회용 반창고
테이프 회사에 다니던 얼 딕슨은 요리만 하면 손이 칼에 베이거나 불에 데이는 아내 때문에 항상 걱정이었다. 다칠 때마다 붕대와 테이프로 응급처치를 해주긴 했지만, 아내가 혼자 있을 때 허둥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혼자서도 쉽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그는 테이프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면 중간에 작은 거즈를 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테이프는 우연히 회사 회장의 눈에 띄어 1921년에 '밴드 에이드'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어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그는 자신이 다니던 '존슨 앤드 존슨'의 부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아내사랑이 낳은 일회용 반창고는 오늘날 거의 모든 가정집에서 상비하고 있으며 20세기 50대 발명품, AP통신 선정한 20세기 10대 히트 상품에도 올랐다.
월트 헌트와 옷핀
1840년 영국 청년 월터 헌트는 사랑하는 헤스타와의 결혼 허락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부탁했지만 가난한 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헌트가 물러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두뇌가 있다고 하자 헤스타의 아버지가 그러면 10일 안에 1,000 달러를 벌어 오라고 했다. 밤새 고민하던 그는 부활절 등 큰 행사 때마다 필요한 리본을 꽂을 때 사용하는 바늘 핀에 많은 사람들이 손을 찔리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철사와 펜치로 갖가지 실험 끝에 안전핀을 만든 그는 헤스타의 손을 잡고 특허출원을 마친 후 리본가게로 가서 1,000 달러를 받고 특허를 팔았다. 결국 헌트는 사랑하는 헤스타와 결혼에 성공했고 안전핀을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도 백만장자가 됐다. 안전핀 특허를 가지고 있었으면 훨씬 부자가 되었겠지만 헌트에겐 특허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다.
사랑이 만든 발명품들
중국 산시성의 신스무라는 할아버지는 매일 차가운 물에 설거지와 요리를 하는 아내가 안쓰러워서 채소 자동 세척기를 발명했다. 할아버지는 이 밖에도 아내가 2층 주택계단을 다니기 힘든 아내를 위한 자동승강기, 아내의 피로를 녹여줄 전기 마사지 의자, 아내의 바닥 청소를 도와주는 전기 걸레 등 31개의 발명품을 개발했다. 중국 관영 매체 CCTV에 따르면 자동 채소 세척기 등 5개 발명품은 국가 특허 등록도 받았다.
1888년 수의사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은 자전거를 타다 다친 아들의 안전을 고려해 딱딱한 바퀴 대신 '공기 타이어'를 발명했고, 1908년 휴 무어는 냉장 정수기를 발명한 형인 로렌스 루엘런이 정수기의 도자기컵이나 유리컵이 자꾸 깨져 사업이 어려워지자 물에 안 젖는 종이컵을 발명했다. 1954년 일본 사쿠라이 여사는 더운 여름 긴 속옷으로 불편해하는 손자를 위해 '삼각팬티'를 발명했다.
발명의 날과 인공호흡
오늘은 발명의 날이다. 측우기를 공표한 1441년 5월 19일을 기려 제정됐다. 측우기는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세자였던 문종이 고안하고 장영실 등이 제작한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로 표준화된 기상측정기구로 6세기 이탈리아보다 무려 200여 년을 앞선다. 세종대왕 시대는 해시계, 물시계인 자격루 등 백성들을 위한 수많은 과학기구들을 탄생시킨 발명의 시대이자 과학기술의 시대이기도 했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은 첨성대, 금속활자, 측우기 등과 함께 민족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 중 단연 으뜸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성에 대한 사랑이 낳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아내사랑의 마음으로 만든 일회용 반창고로 2017년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얼 딕슨은 말했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발명의 날을 맞아 인공호흡법은 물에 빠진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던 한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