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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직후 '소년소녀선언문'과 한글광복 80주년 [허준혁한방]
  • 편집국
  • 등록 2024-12-02 13: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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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직후 '소년소녀선언문'과 한글광복 80주년 [허준혁한방]

광복직후 어린이들의 첫 외침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일제강점기 아래의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고, 인격을 가진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이름 붙였다. '새싹이 돋는' 5월 첫날의 의미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행사를 갖기 시작했다.

일제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민족의식을 높일 것을 막기 위해 <어린이>를 폐간시키고 소년단체 해산명령을 내리며 어린이날 행사도 금지시켰다.

광복이 되자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인 5월 5일에 어린이날 행사가 부활되었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수천명이 모인 이날 자리에서 발표된 당시 '어린이들'의 외침이자 다짐이었던 <소년소녀 선언문>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소년소녀 선언문>

"우리는 왜족에게 짓밟혀 말하는 벙어리요 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집과 우리 글을 찾기로 맹세합니다. 우리는 새 조선 건설의 일꾼이요 새날의 임자인 것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집도 빼앗기지 않고 말도 잃지 않기로 굳게 기약합니다. 우리는 왜적으로 해서 다른 나라 어린이보다 너무도 뒤쳐졌습니다.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서 다른 나라 동무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조선의 어린이인 것을 잊지 않고 단단하고 끈끈하게 뭉치겠습니다." <현대일보> 1946년 5월 6일

일제강점기 동안 어린이들의 가장 큰 슬픔

다시는 집도 말도 빼앗기지 않고 새날 새 조선의 주인으로서 열심히 배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낭독된 <소년소녀의 선서문>은 깊은 울림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가슴 절절이 반성하게끔 하고 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마음대로 못썼던 것이 일제강점기 동안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자 슬픔이었던 것이다.
우리말로 놀고 이야기하고 우리글을 쓴다는 이유로 어쩌면 '영문도 모른 채' 회초리를 맞아야 했던 억울함과 울분... 우리말로 놀고 우리글로 공부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가깝고 큰 자유와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한글광복 80주년과 제1회 '세종대왕 나신 날'

내년이면 겨레광복 80주년이자 한글광복 80주년이 된다. 또한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을 기려 기념해 왔던 '스승의 날'이 '세종대왕 나신 날'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맞는 첫 해이다.

'대한민국의 얼굴'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달자는 운동이 세계한인들과 한글단체, 시민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렇지만 국가유산청과 국회는 귓등으로 듣고 있다. 지금 현판이 누가 쓴 것인지, 가짜인지, 과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상식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라도 공부를 하고 여론을 모아 국가기념일 '세종대왕나신 날'과 한글광복의 해를 맞을 준비 해야 한다. 말로만 기념할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경복궁 광화문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훈민정음해례본 현판을 달아 한글광복 80주년을 기념하고 'K-알파벳' 한글 시대를 활짝 열어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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